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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세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아무리 좋아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독서도 오래 하다 보면, 모든 일이 그러한 것처럼, 작업의 관성이 주는 피로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럴 때 일어나는 조바심 현상 중 하나가 어떤 말을 한 번쯤 터뜨리고 싶다는 은근한 충동이 그 대상을 만나지 못해서 묵직한 체증으로 가라앉다가, 긁을 데를 알 수 없는 가려움증으로 바뀌어서 몸 안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그 ‘어떤 말’은 이를테면 “뛰어난 재능이 나타났다!”는 놀람 겸 환호 겸 외침 같은 것이다. 훗날 그 말의 발성자가 ‘페이디피데스’가 될지, 양치기 소년으로 판명이 날지는 나중의 문제로 차..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세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김유진의 소설, 『평균율 연습』(문학동네, 2024.10)을 읽으면서 AI에게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물어보았다. AI는 꽤 다양한(?) 대답을 주었다. (1) 2024년 4월 기준으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43개국 중 52위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의 평균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약 5.94점으로 150여 개국 중 57위에 위치했습니다. (2) 2024년 5월 기준으로 한국의 지구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38점으로 전체 147개국 중 76위로 나타났습니다. (3) 2024년 5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는..
※ 이 글은 ‘공시사’라는 인터넷 시 잡지에서 청탁해서 쓴 글이다. 원고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연락하더니 원고를 가져가고 발표 소식을 알린 후 감감무소식이다. 잡지 뜻도 ‘공정한 시인의 사회’라고 하던데, “이래도 되나?” 한심해 하다가도 “오죽 하면 그럴까?”라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 글은 한국 여성시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고 나름으로는 요량하고서 썼다. 한국시의 대화성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이 특별히 읽을만할 것이다.1. ‘여류시’란 곤혹스러움 허영자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이른바 ‘여류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1980년대 이전 한국 여성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느낀다. 1980년대 말 일군의 여성 지식인들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한국 여성..
※ 2000년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소감.지난 8일 팔봉 비평문학상이 저에게 주어졌다는 한국일보사의 사고(社告)와 함께 심사보고서, 심사평 그리고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무척 겸연쩍었습니다. 줄곧 남의 글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을 때, 그것도 논쟁적인 시비가 아니라 과분한 평가를 들었을 때, 물건을 사러 시장에 들어간 사람이 장바구니에 담겨 나오는 듯한 황망함이 스쳐지나가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 쑥스러움을 이기기 위해 찬사를 받는다는 건 욕을 먹는다는 것보다도 더 괴롭다는 생각을 억지로 키우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이 쑥스러움이 심한 부끄러움으로 변해 가는 것을 느꼈으며, 급기야는 북북 긁어대고 싶은 붉은 염증이 얼굴 전체를 뒤덮는 기분..
※ 2005년 김환태평론상 수상소감이다.현대에서의 문학상의 특징은 그것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가 주는 훈장도 아니고 사장이 주는 포상도 아닙니다. 문학상은 문학과 관련된 어떤 사설 단체가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의뢰해 역시 문학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지요. 그 상의 발생기원과 그것이 노리는 효과에 대해서는 「문학상의 역사와 기능」이라는 글에서 졸견을 밝힌 적이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그 글에서 빠진 얘기를 좀 더 덧붙여 보겠습니다. 요컨대 문학상의 유통체계는 원환적으로 움직이는 비행접시를 닮았습니다. 그 점에서는 문학하는 일과 문학상을 주고받는 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언어의 진흙을 수평으로 회전시키면서 문학이라는 항아리가 빚어지..
※ 2015년 편운문학상 비평부문 수상 소감이다.고등학생 때 편운선생의 「의자」를 교과서에서 읽었습니다. ‘소년이로학난성(小年易老學難成)’도 그 즈음에 배웠덧 탓인지, 저는 그 ‘묵은 의자’가 나를 비껴갈 것만 같아 부르르 조바심치곤 했습니다. 아주 멋 훗날 그 시를 다시 읽었을 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의자는 모든 이가 비껴 갈 수밖에 없도록 거기 그렇게 놓여 있다는 것을.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과 “묵은 이 의자” 사이에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 평행의 거리가 팽팽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단지 저 멀리에서 하나로 만나는 듯한 착시를 유발하는 철길처럼, 그렇게 모호한 미래가 과거와 오늘을 떠밀고 있다는 것을.아마도 우리는 이 시를 문학의 은유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