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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이 글은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획의 말’로서 씌어진 것이다. 필자가 집필하고 ‘대산세계문학 발행 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채택되었고, 현재 ‘대산세계문학총서’의 모든 책의 말미에 수록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에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었다는 판단하에 이 글이 유의미하리라 판단해 올린다. 21세기 한국에서 ‘세계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자국문학 따로 있고 그 울타리 바깥에 세계문학 따로 있다는 말인가? 이제 한국문학은 주변문학이 아니며 개별문학만도 아니다.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1973)가 두 개의 서문을 통해서 “한국문학은 주변문학을 벗어나야 한다”와 “한국문학은 개별문학이다”라는 두 개의 명제를 내세웠을 때, 한..
※ 이 글은 2014년 9월 19일 ‘국제비교한국학회’ 제 28회 국제 학술대회: ‘동아시아 타자인식과 담론의 과제’(교토: 도시샤대학교 코리아센터)에서 발표된 것이다. 1. 서양 문명의 세계적 확산 이후, 좀 더 구체적으로 동아시아인들에게 있어서는 18세기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집중적으로 진행된 서양의 제국주의적 동진 이후, 비서양인으로서의 동아시아인들에게는 자기에 대한 인식과 정립이 나날의 과제가 되었다. 2. 그런데 이 물음은 독자적이면서 동시에 서양적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침입자에 대항하여 자신의 존재를 세운다는 점에서 반-서양적 독자성을 찾는 행위였으나 동시에 ‘자기 존재’의 기본 모형을 서양으로부터 학습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서양적인 방식으로 짜는 행위가 되었다. 요컨대 서양의 동진..
※ 이 글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인터내셔날 부문’을 수상한 걸 계기로, 『경향신문』 2016년 5월 18일 자에 발표된 것이다. 후에 『문신공방 둘』에 수록되었다. 블로그에 이미 올린 줄 알았는데, 검색이 안 되어서, 처음 게재라 가정하고 올린다.기꺼이 ‘마침내’라고 말하고 싶은 소식이 왔다. 무슨 뜻인가? 한국의 작품이 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한국문학의 위대함을 빛냈도다, 라고 간단히 외칠 수는 없다. 사연은 더 복잡하다. 해방 이후 한국문학은 한글의 우수성에 힘입어 독자적으로 생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한글의 고립성 때문에 유통에 심각한 곤란을 겪어 왔다. 1990년대 들어 번역이라는 가속기가 본격적으로 가설됨으로써 한국문학은 세계 독자들의 손 안에 가 닿을 수가..
※ 이 글은 2015년 ‘파리도서전’(3월 16-21일)에서 발표된 것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동북아시아 3국 안에 위치해 있다. 옆에 있는 두 나라는 정치·경제적으로 강국인 데다가 문화적으로도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에 자신을 알려 왔다. 서양인들은 중국과 일본의 특징들을 꼽는 데 익숙하다. 중국의 미술에는 도가적 신비주의가 있다거나 일본의 문화는 “기호의 제국”, 즉 정교한 인공성의 문화라는 등 말이다. 그런 판단과 함께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해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한국문학에 대해 고유한 특성을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래되어 온 한국문화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의 한국문학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한국문학은 전통적인 한국 고유의 것에서라기보다는 보편적이라고 ..
※ 1993년 8월 낙성대 근처에서 정정호 교수(중앙대 영문과)가 주회한 해외 문학이론 수용에 관한 발표에 대한 토론문이었다. 발표회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선생님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진행을 맡고 계신 정명환 선생님이나 발표를 해주신 김윤식, 곽광수 선생님은 모두 제가 강의를 직접 들은 바 있는 스승님이십니다. 예전 같으면 스승의 그림자도 안밟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옆자리에 앉아 있으니 송구스럽기 이를 데 이를 데 없습니다. 서두가 좀 호들갑스러워졌는데, 학창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제게 몰려왔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대학교 1학년땐가 2학년 때 김윤식 선생님으로부터 뉴 크리티시즘 강의를 받은 적이 있었는 데, 바로 오늘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어..
문학이 예술과 생활의 교통로라면 에세이는 문학과 생활의 가교이다. 징검다리, 흔들다리, 무지개다리, 반월교, 라멘교, 현수교, 도개교, 전접교, 잠수교, 케이블카... 언어로 이루어진 온갖 다리들이 에세이를 이룬다. 이 다리들의 꼴과 용도는 아주 다양하지만 생활어가 그대로 문학어로 변신하는 장소라는 점에서는 한결같다. 문학어는 본래 일상어를 배반하여 그것이 지탱하고 있는 현실을 떠나 상상의 현실로 날아가게 하는 매개체이다. 그러나 에세이에서 문학어는 생활어로 귀환한다. 때로 그 회귀가 문학을 주저앉히기도 하지만, 에세이의 진정한 면모는 삶의 속껍질들과 구석구석에 문학의 입자가 스며들게끔 하는 데서 발한다. 그럼으로써 생활이 스스로 문학적 표현을 얻어 붉게 빛나게 하는 것이다. 그 작업은 은근하여 잘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