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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처음과 끝에 두 개의 길이 있다. 교도소 길목을 빠져나와 신작로 길로 내려간다. 그 사이에 공원이 있다. 도시도 있지만, 도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거기가 실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거기가 어딘가? 교도소가 도시다. 보라. 공원은 도시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교도소는 공원 아래쪽에 있는데, 저녁 때 해는 공원입구로부터 교도소 길목 쪽으로 비춘다. 그러니까 교도소는 공원 입구의 동쪽에 있다. 그 방향은, 만일 “공원 숲의 아래쪽”이라는 정보를 단면도상에서 읽는다면, 공원 숲의 동남쪽이다. 따라서 교도소는 도시와 같은 방향에 있다. 상징적 차원에서 교도소는 도시와 같은 장소성을 갖는다. 실제의 무대가 공원인 소설의 제목이 ‘잔인한 도시’인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감옥, “교도소 교도관들의 출퇴근 행사..

※ 아래 글은 제52회 동인문학상 제 9차 독회에 제출된 심사의견의 수정본이다. 초고본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동인문학상 대상작 검토 주기는 전해 8월부터 당년 7월까지이다. 2021년 동인문학상 독회는 올해 7월 출간작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으로 끝난다. 마감을 하면서 오랫동안 망설였던 얘기를 하고자 한다. 한국문학은 시방 근본적인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지난 9월 10일자 『조선일보』에서 이기문 기자가 쓴 「그 많던 문학 밀리언셀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근래 10여년 간에 진행된 한국소설 판매량의 급감은 독자들이 한국문학에서 전면 철수를 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이 위기의 원인들과 상황은 단일..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2회 2021년 6월 독회의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 전반적인 인상 1. 소설의 생존이라는 문제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소설의 생존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형세이다. ‘이야기’와 ‘문채’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인간사의 대용품들의 공장으로서 출현했던 소설은 19-20세기에 누렸던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잃고 매체와 유통 구조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야기 제작체’의 번성에 실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이 신종으로 출현한 이야기 생산물들은 본래 소설이 누린 영향력을 좇으면서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신체를 가다듬고 있는 중이라서 언제 이 소설이 저 소설이 될지 알 ..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롭게 간행하고 있는 이청준 전집은 한국의 출판사에서 중요한 단절을 긋는 출판물이다. 바로 전집에 ‘주석notes’과 ‘변이variantes’가 포함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주석은 전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에 대해 의미있는 설명을 단 것을 가리키며, ‘변이’는 작품의 최초 출간 이후 작가가 손을 대어 일어난 작품의 변형의 궤적을 가리킨다. 이렇게 ‘텍스트 원전 비평’의 결과를 담은 전집은 한국에서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에 속한다. 이러한 형식을 ‘총서’의 수준에서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는 출판물은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사의 ‘플레이아드 총서Bibliothèque de la Pléiade’로서, 문학사에 기억될만한 작가들의 전집 혹은 선집으로서 발행되는 이 총서..
터키 출장 관계로 뒤늦게 적는다. 망각으로 인한 손실이 크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14,15일, 이청준 선생 3주기 추모 행사 차 장흥에 다녀왔다. 첫날의 ‘이청준 3주기 추모 문학심포지엄’은 ‘장흥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는데, 마침 장흥이 ‘문학특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한국문학특구포럼’이 이어 진행되어서, 아주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참석한 성대한 잔치가 되었다. 또한 박정환 화백이 빚은 이청준 선생 흉상이 완성되어서 공중에 공개하고 사모님께 전달하는 의식이 곁들여졌다. 심포지엄에서 죽마고우인 민득영 선생이 이청준 선생의 호 ‘미백(未白)’이 탄생한 경위를 들려주었다. 이청준 선생과 민득영 선생 등이 이청준 선생의 어머님을 뵈러 갔을 때, 마침 정신이 돌아오셨던 어머니가, “오메, 내 자석 머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