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최인훈 (6)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광장』은 4.19와 함께 태어났다. 작가 스스로가 그 점을 명시하였다. 1960년 11월,『새벽』지에 그 작품을 발표하면서,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썼다. 잘 알다시피 4.19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다. 한국인이 제 의지와 제 힘으로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최초의 역사(役事)였다. 4.19와 더불어 한국인은 시민으로서 살기 시작했다. 시민으로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1960년의 신진작가 최인훈이 감격적으로 토해 낸 “자유를 사..
※ 어제, 즉 2022년 12월 17일, 아주대학교 박만규 교수가 단장으로 이끌고 있는 초학제 연구 모임인 '감정연구단'의 제2회 정례 세미나가 '고등과학원' 제 8동에서 오후 12-18시 사이에 열렸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오래 전에 출판했던 글에서 뽑아 '시기'와 '질투'의 차이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반응이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도 발표 내용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의 심성을 연구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내가 이 글에서 직접 겨냥한 것은 ‘조국건설’의 사명에 직면한 해방 후 한국 지식인들의 정신적 상황이었으며, 보다 넓게는 조선조 이래의 한국 지식인의 심리적 콤플렉스였다. 현대 한국의 이해에 암시를 줄 수 있다는 의견에 기대어, 썩 길긴 하지만, 블로그에 올려도 괜찮겠다고 판단하였다...

※ 아래 글은, 제 53회 동인문학상 제 7차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에 대한 독회의견이다. 조선일보 지면과 홈페이지에서 볼 수가 있다. 지면의 제목은 「고집덩어리들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겠다면」이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김태용의 『확장 소설』(문학과지성사, 2022.05)에선 기상한 제목이 먼저 눈에 띤다. 뭘 확장하나? 보았더니 본래의 역사 위에다 일어나지 않은 또 하나의 역사를 보태고 있다. 북한이 개방하여 남한의 기자가 평양을 방문하고, 천재 시인 이상은 백화점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데, 그걸 보고 달아난 부인 연심이는 훗날 인민 배우가 되는 문예봉을 만난다. 이런 대체 역사 소설들은 흔한 이야기 수법을 거부한다. 지난날을 반성하고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그 대신 아예 시..

1960년 10월 『새벽』 지에 『광장』을 처음 발표하면서 최인훈은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힌다. 이 진술은 그저 이 작품이 체제 비판적인 불온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깥으로부터 들어 온 두 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라는 것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광장』과 새 공화국의 관계는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4․19세대의 인식과 정서 그리고 동경이 통째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문학적으로 그렇다. 문학적으로 뭐가 그렇다는 말인가? 그것이..

※ 아래 글은 제52회 동인문학상 제 9차 독회에 제출된 심사의견의 수정본이다. 초고본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동인문학상 대상작 검토 주기는 전해 8월부터 당년 7월까지이다. 2021년 동인문학상 독회는 올해 7월 출간작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으로 끝난다. 마감을 하면서 오랫동안 망설였던 얘기를 하고자 한다. 한국문학은 시방 근본적인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지난 9월 10일자 『조선일보』에서 이기문 기자가 쓴 「그 많던 문학 밀리언셀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근래 10여년 간에 진행된 한국소설 판매량의 급감은 독자들이 한국문학에서 전면 철수를 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이 위기의 원인들과 상황은 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