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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남진우씨의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문학과지성사, 2006)는 “내 낡은 모자 속에서 / 아무도 산토끼를 끄집어낼 수는 없다”(「모자이야기」)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시인은 말한다. “내 낡은 모자 속에 담긴 것은 / 끝없는 사막 위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일 뿐.” 우리가 씨의 ‘낡은 모자’를 시의 비유로 읽는다면, 이 시구들은 하나의 시론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선언에 의하면 시인은 변신의 시가 아니라 유랑의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변신의 시란 은유로 가득 찬 시를 뜻한다. 그리고 은유로 가득찬 시란 대상과의 합일이 때마다 충만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유랑의 시에도 은유에 대한 꿈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변신의 시에서와는 달리 거기에는 즉각적인 동화가 일어나..
※ 아래 글은 『매일경제』가 올해 출범시킨 '만추문예' 제 1회 시부문 심사평이다. 오늘 신문 지면에 발표되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장년 이후 세대에게 새로운 문학 등용문으로 등장한 ‘만추문예’가 시나브로 사그러들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다시 뜨겁게 지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오늘날 ‘문학’은 실로 긴요한 생명수가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역할이 ‘즐겁게 하면서 삿됨 없이 교훈을 준다’는 것은 기원전부터 전승된 한결같은 지언(至言)이다. 한데 작금의 시대를 횡행하는 ‘향락적 문화’는 오로지 즐거움만을 주는 데에 맹종하는데, 그게 기쁨의 진한 향기를 세상에 드리우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을 얻지 못하는 데서 터지는 별별 분노로 북새통을 일으킨다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니..
우수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시의 존재이유에 육박하려 고투한 작품들이 많았다. 한국의 독자들이 시로부터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시작한 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그런 참에 반가운 현상을 목격한 것이다. 대학생의 시들에서 이를 보았으니, 이를 시가 다시 오늘의 육지에 밀물져 올 새 조짐으로 보아도 좋을까? 실로 대학생 문예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수줍은 새로움이라 할 것이다. 초심자의 자세로 문학의 본질에 파고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수줍고 그러나 그 순수한 자세로 기성 문학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한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언뜻 보아서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두 가지 양상을 여하히 하나로 뭉쳐 보여주느냐에 따라 대학생 문학의 의미가 파악되고 또 그것이 문학장에 미칠 여파가 셈해질 것이다..
한지혁의 「오래된 배」, 「스물」, 「기억 속의 너만이」는 젊은이의 방황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시는 그 이상이다. 손선혁의 「鬪病」, 「반달」, 「벙어리 시인」 등은 감정에 정직한 시다. 감정에 정직하다는 것은 감정을 그냥 노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진실성을 계속 되묻는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그것을 다양한 거울들에 비추어보는 대신에 감정 자체에 매달리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감정은 실감을 상실하고 관념화된다. 류설화의 「겨울나무」, 「비(雨) 와 비(悲)」, 「강물」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썩 세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데 그 멋진 말들이 생각과 감정의 상투성에 휘말려 단순한 수사적 장식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해준의 「햇살의 해저에서」, 「화투연」, 「분자적인 개」 등은 ..
구자창의 「무덤의 시간」은 의식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관념이 강해 묘사가 자유롭지가 못했다. 김채민의 「똑똑한 거지 공방」은 스마트폰을 통하여 쏟아지는 말의 홍수라는 오늘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예리한 풍자로 읽을 수 있다. 비판적 인식을 굳이 시로 쓸 때의 필연성을 더욱 고민했으면 한다. 박시현의 「화장」은 삶의 사건들을,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의 이분법으로 단순화시켜 감정을 고양시킨 후, 같은 단어의 다중적 의미를 통해 그 감정에 미묘한 그늘들을 입히고 있다. 이런 기교가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발전하려면 시야와 사색이 필요할 것이다. 「별 헤는 밤」 등 장효정의 시들은 삶의 세목들에 대한 섬세한 느낌들이 돋보였다. 그 느낌 너머의 세계가 유기적으로 펼쳐지지는 못했다. 「창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