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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말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는 대학 내의 문학 활동이 썩 활발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열기 속에서 새로움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대학생 문학은 본격문학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들이 그런 대학생 문학의 ‘소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 다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들 속에 끓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고심은 자주 작위성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무리조차도 좋은 경험으로 작용한다. 6편의 시를 마지막 후보로 골라 본다. 「트레드밀」(참가번호 19), 「날개짓과 발버둥 중 더 고상한 걸 고르시오」(66), 「철」(74), 「별과 기름」(92), 「낙화」(95), 「숲지기」(96). ..
투고된 112편의 작품 중에서, 「나무」, 「제곱은 사랑, 닮아가는 것이기에 아름답다 」, 「晴天雨」, 「전농동」, 「모기」, 「빈익빈부익부」, 「바다」, 「동행」, 「우리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를 마지막 후보로 골랐다. 「나무」는 소말리아 난민의 참상을 나무에 투사함으로써 인고와 희망을 동시에 끌어내려 한 수작이었는데, 비유 자체가 꽤 힘겨운 의지에 지탱되고 있었다. 「제곱은...」과 「모기」는, 수학기호와 모기라는 특이한 매개물들에 기대어 사랑의 미묘함을 풀이한 재미난 말놀이였지만, 말놀이와 시의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晴天雨」는 사물을 새롭게 보는 직관이 돋보인 소품이었다. 「전농동」과 「빈익빈부익부」는 각각 신의 보편성과 우화에 근거해 사회적 부조리를 풍자하는 힘이 있었으나, 기술..
한지혁의 「오래된 배」, 「스물」, 「기억 속의 너만이」는 젊은이의 방황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시는 그 이상이다. 손선혁의 「鬪病」, 「반달」, 「벙어리 시인」 등은 감정에 정직한 시다. 감정에 정직하다는 것은 감정을 그냥 노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진실성을 계속 되묻는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그것을 다양한 거울들에 비추어보는 대신에 감정 자체에 매달리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감정은 실감을 상실하고 관념화된다. 류설화의 「겨울나무」, 「비(雨) 와 비(悲)」, 「강물」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썩 세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데 그 멋진 말들이 생각과 감정의 상투성에 휘말려 단순한 수사적 장식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해준의 「햇살의 해저에서」, 「화투연」, 「분자적인 개」 등은 ..
구자창의 「무덤의 시간」은 의식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관념이 강해 묘사가 자유롭지가 못했다. 김채민의 「똑똑한 거지 공방」은 스마트폰을 통하여 쏟아지는 말의 홍수라는 오늘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예리한 풍자로 읽을 수 있다. 비판적 인식을 굳이 시로 쓸 때의 필연성을 더욱 고민했으면 한다. 박시현의 「화장」은 삶의 사건들을,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의 이분법으로 단순화시켜 감정을 고양시킨 후, 같은 단어의 다중적 의미를 통해 그 감정에 미묘한 그늘들을 입히고 있다. 이런 기교가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발전하려면 시야와 사색이 필요할 것이다. 「별 헤는 밤」 등 장효정의 시들은 삶의 세목들에 대한 섬세한 느낌들이 돋보였다. 그 느낌 너머의 세계가 유기적으로 펼쳐지지는 못했다. 「창경..
대학생의 시에는 새로운 시를 쓰겠다는 의욕과 진실에 대한 탐구와 과잉된 표현 충동이 한편에서 이글거리며, 다른 한편에선 새로운 어휘를 채집하지 못해 막막해 하고 진실의 통로를 열지 못해 조급해 하는 심사가 설익은 문체 위에서 종종걸음을 치는 민망한 광경이 동시에 전개되곤 한다. 투고된 대부분의 시들 역시 시의 초입에서 고투하고 있는 모습들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김성호의 「열쇠」, 김여진의 「‘자연의 신비’ 편」, 박서영의 「부탁」, 박신혜의 「거기」, 박종성의 「물고기자리」, 서동우의 「고생」, 신진용의 「칸토어 집합」, 전아영의 「귀천」, 조형민의 「잠자리의 죽음」, 채규민의 「존재의 인상」, 최혜령의 「벚꽃: 생동이 없고 창백하게 하얀 것」이 그 투쟁의 현장을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