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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소네트 II 오 아름다운 갈색 눈, 오 외면하는 시선 오 뜨거운 숨결, 오 터져버린 눈물 오 컴컴한 밤, 헛되이 기다릴 뿐 오 빛나는 아침, 헛되이 돌아오네. 오 하소연은 슬프지만, 오, 욕망은 끈덕지네 오 시간은 허비되고, 오, 수고는 낭비되네 오 수천의 죽음이 수천의 덫에 걸렸네 오 내게는 더 가혹한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네. 오 웃어요, 오 이마야, 머리카락아, 팔아, 손아, 손가락들아. 오 루트는 울고, 비올라, 악궁, 그리고 목소리 : 한 여인을 달구는 엄청난 화염 ! 내 마음 그대로 가득하고 그토록 많은 불길 간직했는데, 그대의 그 많은 장소들을 내 마음 더듬더듬 했는데, 그대 위에선 어떤 섬광 날지 않는구나. ※ 플레이아드 판, 『프랑스 시선집 Anthologie de la poésie fra..
나의 토리개에게 - 카트린느 드 로슈(Catherine des Roches) 토리개 내 아끼는 보물, 나는 그대에게 약속하고 맹세하오. 그대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결코 변함 없으리라고. 이랬다 저랬다 하고 그 마음 얼마 못가는 바깥의 재산보단, 집에서 그대가 이룬 명예를 사랑하오. 그대를 곁에 두고 있으면 나는 한결 안심이 되오. 잉크와 펜을 가지런히 준비하고 내 그 앞에 앉아, 나를 지키려 할 때, 그대는 어떤 모욕도 밀쳐내줄 수 있다오. 하지만 토리개, 내 친구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당신을 이토록 사랑하느라고 나는 이른바 교양있는 세계로부터 버림받았다오. 이따금 글을 쓰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은 그대의 가치를 밝히는 것, 토리개 내 보물이여, 내 손 안에 있는 건,..
노래 II 그대는 보고 계시지요 ? 정숙한 사랑의 광채가 내 일하는 팔 아래에 날마다 불 밝히는 걸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당신은 보고 계시지요 ? 내가 당신을 위해 기운을 다하고 당신을 갈망하며 몸이 가라앉으니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당신은 보고 계시지요 ? 아름답지 못하게 당신과 다투는 일은 하지 않아요. 그러나 더 잘 되기 위해 당신을 보채긴 하지요.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설혹 어떤 다른 사람의 사랑이 온다 하더라도 결코 당신에게 잘못하지 않겠어요. 당신을 울게 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당신은 보고 계시지요 ? 순간의 변덕없이 언제나 당신에게 한결같으니, 시간은 더욱 단단하게 해준답니다.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
Le Lai du Laostic _ Marie de France 어느덧 여름저녁이 되어 숲과 들판은 녹음이 우거지고 목동들은 저마다 꽃처럼 피어납니다. 방울새들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감미로운 기쁨을 노래합니다. 마음이 끌리는 데 따라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거기에 전적으로 몰입한다고 해서 놀랄 일이겠어요? 저는 그런 기사(騎士)의 진실을 얘기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는 전력을 다해 사랑에 집중합니다. 부인 편에서도 말들과 눈길로 똑같이 그리합니다. 밤이 오고 주군이 잠자리에 들면, 그녀는 시시때때로 일어나 망토로 몸을 덮습니다. 그리곤 창가로 향합니다. 왜냐면 그녀의 벗이 제 집 창가에 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사실 벗은 거기서 밤을 지새운답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최소한의 기쁨을 나..

※ 계간 『시사사』(한국문연)의 요청으로, 2020년 겨울호 부록으로 번역 • 게재한, ‘프랑스의 여성시’를 블로그에 올린다. 아래 글은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다. 문학의 기본 꼴이 서양 문학의 방식으로 재편된 이래, 즉 근대 이후의 한국 문학장(場)에서, 프랑스의 시는 한국의 시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저 15세기의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으로부터, 보들레르, 랭보, 말라르메, 폴 발레리를 거쳐, 얼마 전 작고한 이브 본느푸아Yves Bonnefoy에 이르기까지 수다한 시인들의 시가 한국시에 전사(傳寫)되어 창조의 영감으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 여성 시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치 프랑스에는 여성 시인은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그러나 그렇지 않다. 프랑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