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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김지하가 해월과 증산에게서 전거를 끌어내며 ‘생명사상’을 제기했을 때, 그것은 순간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촉발시켰다가, 비과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는 이론가들의 비판과 함게 차츰 그 광도를 잃어왔다. 하지만 논의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도중에도 그것은 문학적 실천의 장에 은근하고 깊숙이 스며들어간 모양이다. 많은 작가·시인들이 의식적으로 ‘생명’을 화두로 삼는 경우를 여러번 목격할 수 있다. 이시영의 세 번째 시집 『길은 멀다 친구여』(실천문학사, 1994)의 시편들을 붙들어 매고 있는 주제 단위도 생명이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김지하의 생명과 다르며, 혹은 60년대의 생명주의 문학(박상륭·이세방)의 생명과도 다르다. 그 다름은 그것이 죽음과 맺고 있는 특이한 관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김지하의 생명이 죽..

『결정본 김지하 시전집』(도서출판 솔, 1992)이 출간되었다. 편자와 시인에 의하면, ‘결정본’이 필요했던 이유는, 시인의 “복잡하고 험했던 인생 탓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기존 시집들의 편집·교정의 오류들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 한다. 편집자는 「편집자 일러두기」에서 그 내력을 얘기하고, 2권 말미의 「편집자 주」에 그 세목들을 밝혀놓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 김지하 시의 이해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은 김지하의 초기시와 후기시 사이에는 지금까지 알려져왔던 것과 같은 단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는 것일 것이다. 황토 이전과 황토 이후로 나뉨당했던 김지하의 초기시들은 모두 황토와 같은 시기에 씌어진 것들이다. 황토는 그 중 정치적 효용성이 강한 것들을 뽑아..
※ 아래 글은 인터넷 매체, '컬럼니스트' 5월 11일자로 발표된 글이다. '컬럼니스트'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다른 길을 간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하여 김지하 선생이 돌아가셨다. 편찮으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소문으로 돌았지만, 선생은 끈질기게 죽음과의 줄다리기를 이어 나가셨다. 선생의 병을 걱정하시던 사모님, 즉 토지문학관의 김영주 관장님이 2019년에 먼저 돌아가셔서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생전에 부부의 정이 무척 애틋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 해 10월에는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강연 때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까지 부부가 함께 오셨었다. 선생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을까? 그이는 1980년 감옥에서 나오면서 민족문학 대신 생명사상을 들고 나왔다. 그이의 생명 사상에는 죽음에 반대하는 외..
※ 아래 글은 지난 8일 돌아가신 김지하 선생의 추모글로서 '경향신문' 5월 11일자에 실린 글이다. 민주화의 상징이자 생명 사상의 척후병 김지하 선생은 말년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한국 분단 뒤의 ‘산업화’를 추진한 박정희와 정면투쟁의 ‘40년 민주화’를 추진하며 늙어버린 미학 지향의 시인이다.” 필자는 그 말을 이렇게 옮긴다. “김지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생명 사상의 척후병이었다.” 가난했던 대한민국. 분단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독재가 칙칙한 장막을 세상 아래로 드리웠을 때, 그걸 찢으며 전면적인 근대화와 민주화를 요구하고 관철시킨 것은 4.19 혁명이었다. 다음 해 5.16 세력이 경제 중심의 근대화를 내세우며 새로운 형태의 독재를 진행하자, 두 개의 정신은 사생결단의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정..
줄탁 저녁 몸 속에 새파란 별이 뜬다 회음부에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결정본 김지하 시전집 2』(1986~1992), 도서출판 솔, 1993) 해가 저물고 있다. 유한자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세모(歲暮)는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순환하는 자연의 눈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죽음은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진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사람과 자연의 두 눈을 포개어 죽음의 비애와 신생의 희열이라는 두 개의 근본적 감정을 증폭시켜왔다. 비애가 클수록 희열은 더욱 차오른다. 김지하의 「줄탁」도 그러한 재생 신화의 한 자락을 펼쳐 보인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