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심사평, 추천사 등 (90)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세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아무리 좋아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독서도 오래 하다 보면, 모든 일이 그러한 것처럼, 작업의 관성이 주는 피로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럴 때 일어나는 조바심 현상 중 하나가 어떤 말을 한 번쯤 터뜨리고 싶다는 은근한 충동이 그 대상을 만나지 못해서 묵직한 체증으로 가라앉다가, 긁을 데를 알 수 없는 가려움증으로 바뀌어서 몸 안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그 ‘어떤 말’은 이를테면 “뛰어난 재능이 나타났다!”는 놀람 겸 환호 겸 외침 같은 것이다. 훗날 그 말의 발성자가 ‘페이디피데스’가 될지, 양치기 소년으로 판명이 날지는 나중의 문제로 차..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세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김유진의 소설, 『평균율 연습』(문학동네, 2024.10)을 읽으면서 AI에게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물어보았다. AI는 꽤 다양한(?) 대답을 주었다. (1) 2024년 4월 기준으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43개국 중 52위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의 평균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약 5.94점으로 150여 개국 중 57위에 위치했습니다. (2) 2024년 5월 기준으로 한국의 지구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38점으로 전체 147개국 중 76위로 나타났습니다. (3) 2024년 5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는..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두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어떤 특정한 장소가 소설적 주제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있다. 가령 한국 소설에선 안수길의 『북간도』가 그런 작품이다. 소설은 아니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해당할 것이다. 역시 소설은 아니지만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쉬로François Sureau는 ‘센느 강’을 자기 인생의 본질로 삼아 그 긴 줄기 속에서 문학과 사상을 길어 올린 작품, 『시절의 황금L'or du temps』(Gallimard, 2020)을 상자했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흔한 건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 장소가 일종의 상징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상징성을 부여하는 건 그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두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김지연의 『조금 망한 사랑』(문학동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건 만의 소설’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소설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배경이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배경이 사건에 통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의 행위 차원은 맥락과 사건으로 구성된다. 사건은 형상의 출현과 전개를 맥락은 그런 형상이 출현하게 된 배경을 알려준다. 맥락을 통해서 독자는 사건을 이해하고 그 사건의 추이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맥락의 파악은 소설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사전 인지’ 사항이 된다. 김지연의 소설에는 그런 맥락이..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첫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상층부 경영인들의 오류로 ‘프로야구’가 망했고 심지어 금지까지 된다는 이야기가 가능한가? 이런 이야기가 전혀 성립할 수 없는 가정이란 건 프로 야구팀 어린이 회원이 아니더라도 금세 알 수 있다. 이야기 성립 불가능의 증거를 대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야말로 한심한 짓이리라. 이 스포츠가 옆 나라에도 태평양 건너에도 매일 시끌벅적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만 상기하면 된다. 이 소설집(김홍, 『여기서 울지 마세요』, 문학동네)의 거의 모든 세목들은 멀쩡하고 뻔뻔한 허구들로 빼곡하다. 하나의 예만 들어보겠다. 벨이 보이지 않아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