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문신공방 (101)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황인숙의 시들(『새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문학과지성사, 1988)은 탄성의 바닥을 싱싱하게 튀어오른다. “얏호, 함성을 지르며 /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 팅!팅!팅!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그는 세상의 깊이를 무시한다. 세상을 그는 미끄럼 지치거나, 고양이의 발을 가지고 사뿐사뿐 뛰고 쏘다니고 내닫는다. 말을 바꾸면 세상은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진 해독(解讀)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분홍새’를 보았다해서 “무슨 은유인지, 상징인지” “갸우뚱 거릴” 필요는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그는 장난하듯 세상을 놀고 세상을 어린이의 상상 속에서처럼 자유롭게 변용한다. 그 장난이 얼마나 혈기방장한가 하면, “지구를 팽이처럼 / 돌리기. / 쉬운 일이다. / 사시나무 등어리건 초등학교의 ..
선진조국의 시대에도 시인들은 끊임없이 절망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시란 본래 천상의 노래라서 이 아랫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른바 ‘시적인 것’이 카피와 개그와 대본에게 광범위하게 잠식당하고 있는 반면, 정작 시는 독자를 잃어가고 있는 이 문화산업의 시대에 시인들은 시의 위기를 세상의 위기로 치환시켜 표현하는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시는 시방 죽음 속을 기어가고 있다. 타락이 만연한 세상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죽음으로써 항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절망의 노래는 세상에 대한 시의 가장 절박한 응전인 것이다. 서원동의 『꿈 속에서 꾸는 꿈』(시와 시학사, 1995)도 절망의 노래를 부른다. 시인은 “우리들이 꿈꾸고 아파해 온 희망”이 “구겨지고 짓밟”혔음을 말한다. 그는 “인간들..
생에 대한 물음이 곧바로 생의 붕괴를 확인하는 절차가 되는 때가 있다. 장례, 이별, 파산, 시한부 생명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나락에 빠지게 하는 수렁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그 수렁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어떤 두께의 암흑 속에서도 빛을 향해 튀어오르고야 마는 특이한 순발력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누벨 옵쇠르바퇴르’지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 환자들이 남은 생애 동안 건강했을 때는 전혀 맛보지 못했던 강렬하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가 있다. 그들은 죽음마저도 하나의 생의 기획으로 만듦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던 것이다. 하지만, 생의 붕괴가 어느 순간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항구적이라면? 다시 말해 우리의 일상 그 자체가 온통 삶의 붕괴이고 죽음이라면? ..
지난 달 끝무렵, 경주에서는 시인 정일근이 화가 김세원과 함께 『경주 남산 시․판화전』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경주 남산은 이름모를 불적들이 들풀처럼 가득 번져있는 산이다. 그 불적들만큼 온갖 전설들이 그 산에 둥지를 트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는 산, 박혁거세가 그 기슭에서 났고, 또한 헌강왕 때는 산신이 현신하여 나라 멸망을 경고했다는 산이 바로 남산이다. 영화와 패망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아니 탄생으로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내력들이 중중첩첩으로 포개져 있는 이 산을 두고 시인이 노래를 왜 지었겠는가? 내력이란 단순한 역사적 사실들의 진행이기 이전에 마음의 집단적 발화이고 굽이치는 소망의 강줄기인 것. 시인은 남산의 불적들이 저마다 머금..
시집, 『본동에 내리는 비』(문학과지성사, 1988) 뒷 표지에 의하면, 윤중호는 서울 사는 촌놈이다. 서울에선 "에그 촌놈" 소리를 들으며, 고향에 가면, 친구들이 말은 안하지만, 그의 몸 구석 어딘가에 빤지름한 도시의 물때가 묻어 있는 것 같아서 어색하다. 그는 이 `재수 없는 삶'이나, 그의 시들이나 꼭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도시 때가 묻어 있다고 어색해 하는 그만큼 그는 촌놈이며, `촌놈'소리를 들으며 버티는 그만큼 서울과 싸우는 서울놈이다. 그 싸움은 서울로 상징되는 지배적 생활 양식이 낳은 갖가지 부정적인 삶의 모습들, 물질 만능, 속도 경쟁, 투기, 조직적 폭력, 자기 보존 본능,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과 그로 인해 촌으로 상징되는 사람들이 당해야 하는 가난과 소외와 죽음, 그리고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