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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이 글은 ‘공시사’라는 인터넷 시 잡지에서 청탁해서 쓴 글이다. 원고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연락하더니 원고를 가져가고 발표 소식을 알린 후 감감무소식이다. 잡지 뜻도 ‘공정한 시인의 사회’라고 하던데, “이래도 되나?” 한심해 하다가도 “오죽 하면 그럴까?”라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 글은 한국 여성시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고 나름으로는 요량하고서 썼다. 한국시의 대화성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이 특별히 읽을만할 것이다.1. ‘여류시’란 곤혹스러움 허영자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이른바 ‘여류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1980년대 이전 한국 여성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느낀다. 1980년대 말 일군의 여성 지식인들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한국 여성..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아홉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위수정의 『우리에게 없는 밤』(문학과지성사, 2004.07)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현실의 흐름에 느슨하게 끌려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감정적인 흥분도 보이고 지적인 호기심도 읽히고, 스스로 이행하는 의지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들은 격렬하지 않고 매우 조용해서 독자가 의식하고 읽을 때에만 감지할 수 있다. 또한 각 인물들의 행동에는 저마다의 행렬이 있다. 그들 사이에는 사연의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현대인들의 총체적 고립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삶 밑바닥을 관류하는 공통의 느낌..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아홉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강정아의 『책방, 나라 사랑』(강, 2024.07)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은 문체의 투명성이다. 가령 이런 대목을 보자.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언니는 그 대학에서 제일 예쁘고 인기 있는 여학생이었다. 만나는 모든 남자들이 언니를 보기만 하면 반했다. (p.31) 이 짧은 두 문장은 문장과 의미가 그대로 일치한다. 어떤 암시도, 숨은 의미도, 내포도, 비유도 없다. 다른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 보자. 아이는 소녀와 함께 있으면서 그 맑은 눈과 건강한 볼과 머리카락 향기에 온전히 홀린 마음으로 그네를 바라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소녀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여덟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로뎅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을 로봇에게서 만나는 건 곤혹스런 느낌을 준다. 잘 알다시피 저 유명한 조각가의 ‘생각인’은 ‘지옥의 문’(단테) 앞에서 고뇌에 빠져 있다. 임수현의 『퇴역로봇』(문학수첩, 2024.06)이 전해주는 우리의 ‘생각봇’, ‘제로원’은 DMZ 안에 버려진 채 끊임없이 생각의 더듬이를 옮기는 일에 빠져 있다. 그는 본래 전투용으로 개발되었으나 전쟁이 기획상품이 되어버린 시대에 할 일을 잃고, 탐사로봇으로 살다가 마침내 퇴역당하고 만다. 우선 이 로봇이 가상적으로 AI의 미래를 그린다는 점을 가외로 짚고 넘어가..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여덟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듀나의 짧은 단편들이 주는 매력은 미니멀한 사건이 윙크하듯이 띄우는 미묘한 암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암시들은 정말 미묘(微妙)한데, 그것은 독자를 거듭해서 해석의 두 갈래 길 앞에 놓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소설집, 『찢어진 종이조각의 신』(단비, 2024.06)의 첫 작품, 「가거라, 작은 책이여」는 유명한 문학작품들에 대한 독서경험을 제공하는 ‘책읽어주는 아무개’류의 ‘사이파이Syfy’ 버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소설로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정보취득으로 전락한 독서(경험)가 아니라,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과 그 가족들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