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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만 시대의 시와 비평의 역할

비평쟁이 괴리 2025. 3. 17. 08:49

2015년 편운문학상 비평부문 수상 소감이다.

고등학생 때 편운선생의 의자를 교과서에서 읽었습니다. ‘소년이로학난성(小年易老學難成)’도 그 즈음에 배웠덧 탓인지, 저는 그 묵은 의자가 나를 비껴갈 것만 같아 부르르 조바심치곤 했습니다. 아주 멋 훗날 그 시를 다시 읽었을 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의자는 모든 이가 비껴 갈 수밖에 없도록 거기 그렇게 놓여 있다는 것을.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묵은 이 의자사이에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 평행의 거리가 팽팽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단지 저 멀리에서 하나로 만나는 듯한 착시를 유발하는 철길처럼, 그렇게 모호한 미래가 과거와 오늘을 떠밀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우리는 이 시를 문학의 은유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모든 것이 충만해야만 성이 차는 시절에 말입니다. 문학마저도 세상의 탱탱한 포만 위에 케이크 위의 버찌처럼 앉아 있는 때입니다. 조간지는 아침을 시로 열, 거리엔 오늘의 시 한 구절이 휘날리며, 국회의원의 셔츠 포켓엔 시 한 수가 코팅되어 들어 있습니다. 년전에는 많은 작가들이 포탈 사이트들에서 소설을 앞다투어 연재하는 횡재를 만났고 그리고 이듬해 몰락했습니다. 이 호시절에 편운 선생의 시를 읽는 마음은 이상의 오감도를 슬로우 모션으로 트는 것과 비슷합니다.

선생은 돈이 피가 되고 / 피가 돈이 되는 세상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 , 하니 하늘로 뚫린 창문을 내다봅니다”(피묻은 지폐)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 뚫린 창문 너머를 응시한 채로 일본이 제국주의로 판을 칠 때 / 나는 태어나가난했고 // 한국이 대중주의로 판을 칠 때/ 나는 방황하며, 슬펐고 // 세계가 돈주의로 판을 칠 때 / 나는 고독하며, 죽어 가고 있었”(나의 생애)다고 당신의 생애를 쓸쓸히 반추하셨습니다.

제가 의자에서 얼핏 보았던 도래의 무한한 연기는 이 허무의 반향일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허무를 무념으로 바꾼 이의 반격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서둘러 완성하고자 하는 오늘날에 대해서 말입니다. 어쩌면 비평은 바로 그 허무에서 무념을 읽어내는 일을 제 사업으로 삼고 있을 것입니다. 편운 선생을 기리는 분들 덕택에 모처럼 깊은 사념의 향내를 맡았습니다. 감사합니다.(201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