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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완벽한 생애를 이루는 작은 사람들의 협심 -조해진의 『완벽한 생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완전한 인간에 대한 소망이 봄바람처럼 일렁인다. 그 소망은 ‘칼로카가디아’ 등의 고전적인 용어로뿐만 아니라 ‘완전체’같은 청년들의 유행어에도 배어 있다. 인간의 내장에 각인된 본능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소망을 퇴색시킨다. 문명이 발달하고 거대해질수록 인간은 점점 왜소해진다. 어느날 그는 수레바퀴 자국에 깔린 붕어처럼 납작해진 자신을 보고 절망한다.. 조해진의 『완벽한 생애』는 말한다: “모든 삶은 흘러갔다”; 이제 “낙원이 있다고 믿는 희망은 기만적”이다. 그러나 희망을 단념할 때 비로소 진정한 결심이 선다. 작가는 가난, 정치적 자유, 사내 왕따, 동성애, NGO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기웃거리게..

※ 아래 글은 2022년 53회 동인문학상 1월 독회에 제출된 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판타지, 우울의 색 조해진(『완벽한 생애』, 창비, 2021.09)은 꾸준하다. 소수자에 대한 관심, 사건이 아니라 사연인 이야기들, 그리고 사연의 흐름에 내맡겨진 인물들. 여기까지는 아마도 예전에 유사한 사례들이 많이 있을 수도 있다. 조혜진 소설의 특징은 인물들이 이런 흐름에 쓸려 가면서도 실은 맨 앞자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는 서둘러 자신을 밝히는 일에 기꺼워하며, 자유로운 만남을 지향하는 사람은 모든 구속의 요소들을 풀어버려, 만남의 실패를 유발한다. 요컨대 조해진의 인물들이 겪는 아픔은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을 미리 몸으로 구현하기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독회의 5월 선정작에 대한 심사평의 원본이다. 원본이라 함은 종이 신문에서 지면의 제약으로 줄여야만 했던 얘기들을 원문 그대로 싣고 있다는 뜻이다. 요약문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질문 하나! ‘멧새가 운다’라고 말하는 것과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박두진, 「묘지송」)이라고 묘사하는 것, 둘 중에 어떤 게 더 느낌이 강렬할까? 두말할 것도 없이 2번. 청록파 시인의 시구가 주는 전율은, 마치 우는 새를 눈앞에서 본 듯, 언어로서 그 형상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 언어의 생생함에 맛을 들이면 독자는 형상이 사실을 배반해도 묘사에 취한다. 이육사의 「청포도」, 오규원의 “물푸레 나무 한 잎 같[은] ..
『천사들의 도시』(민음사, 2008)를 통해서 조해진이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았고, 그리고 매우 놀랐다. 그는 문체가 무엇인지를 알면서 쓰고 있다. 한국 소설이 리얼리즘의 족쇄에서 해방된 이래 반짝이는 개성적 문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은 아직도 문체를 수사적 장식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언어 인테리어라고 할까. 반면 조해진의 문체는 소설적 정황 그 자체다. 그의 문체는, 아도르노가 형식은 침전된 내용이라고 말했을 때와 거의 같은 의미로, 침전된 의식이다. 그로부터 두 가지 조해진적 풍경이 나타난다. 하나는 지극히 절제된 언어의 풍경이다. 언어가 말하기보다는 침묵이 차라리 말한다. 다른 하나는, 앞의 것과 연관된 것으로서, 말과 침묵과 노래와 사색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