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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이글은 1992년 제 4회 ‘소천비평문학상’ 수상 소감으로 씌어진 것이다.제가 소천비평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당황함을 여러분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변변찮은 글이 상을 받을 만한가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제가 그려온 짧은 비평의 궤적이 도통 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문학과 문화제도 사이의 관계에 더듬이를 대고 분석적 행위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런 향연에의 초대는 자신이 친 그물에 직접 걸리는 시험 앞으로 그의 등을 얄궂게 떠다밉니다. 그러나 그 손바닥은 부드럽고, 그것을 통해 제 마른 심장을 적시며 들어와 퍼지는 것은, 다정이 병이지 않은 분들의 저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격려입니다. 그 넘치는 따뜻함은 실은 그것이 문학의 오래된 소..
미네르바 신드롬의 주변에 내노라하는 명망가 지식인들이 "화려한 조연"으로 등장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1980년대에 대학생이 쓴 마르크스 요약본을 밑줄 그어가며 탐독하던 대학교수들 생각이 났다. 그때 그 꼴을 보면서 한국지식의 얇고도 얇은 인프라를 한탄했더랬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나 보다. 아니, 나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되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론의 앞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말저말을 보면 말이다. 미네르바 사건은 그런 총체적 상황 속에서 특별히 열불난 한 귀텡이가 찢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쓴날: 2009.01.11)
※ 이 글은 『매일경제』와 ‘교보문고’가 공동 주최하는 ‘만추문예’ 제 2회 ‘시부문’ 심사평이다. 정호승 시인과 심사를 같이 했고 심사평은 필자가 썼다. 당선자의 이름은 ‘김인식’씨로 밝혀졌다.올해의 응모작들에서 특징적인 현상을 하나 든다면 ‘다채로움’이라 할 것이다. 이는 만추에 지은 시라도 청춘의 의욕과 신생의 활기를 머금고 새싹처럼 푸르게 돋아나는 모습을 띤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시들에 기분좋게 취한 심사자들도 새벽 들판을 뛰어다니는 기분으로 흔감하다. 최종적으로 세 편의 시가 최종 후보작으로 선택되었다. 응모번호 61번의「유리의 경계」, 139번의 「기다리다 1」, 175번의 「자서전을 짜다」이다. 「유리의 경계」는 투명한 유리에 부딪쳐 죽은 참새를 통해서 외관의 매혹과 허위성을 다루고 ..
[작품]걸어오는 십자가 1어깨 위에 어깨 올라서고 또 어깨 위에 어깨 올라서고 달빛도 별빛도 못 본 척 흘러만 갔다 돌이 요염한 모란꽃을 피우고 돌이 찬란한 공작새 날개 드리우고 돌이 햇볕을 삼켜버리고 돌이 바닷물을 마셔버리고 돌이 하늘을 다 차지해 버렸다 납작 깔린 입술이 부르르 떨리던 밤이 더욱 먹물로 차올라 길은 화약고가 터지듯이 날아가고...... 부러진 어깨들 하나씩 둘씩 보스락보스락 다 차지해 버린 하늘이 뇌 송 벼락 내리치며 쏟아붓는 빗줄기 흙탕물 속에 가랑잎처럼 떠내려가고 개미 떼처럼 발버둥 치며 떠내려가고 하늘은 죽었다고 소리 지르며 떠내려가고 흙은 어디 갔느냐고 울부짖으며 떠내려가고 등에 붙은 위장을 움켜쥐고 떠내려가고 말을 삼켜버린 입술들이 보스..
‘소울 메이트’가 말 그대로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영적으로 맺어져 있는 존재라는 뜻이라면, 내게 그런 사람이 점지되어 있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이른바 ‘케미칼’이 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건 DNA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미칼이 정말 잘 통해서 ‘소울 메이트’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울 푸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나의 신체적 화학 성분들의 분포에 잘 호응하는 음식들은 있을 것이다. 반대의 음식들도 있을 것이고. 그런 생각을 머리 속에서 궁글리다 보니 나는 어느새 희미한 기억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은 학교를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온 참..
※ 아래 글은 2014년에 발표된 것이다. 그 이후 ‘한류’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필자의 생각에도 얼마간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입장은 여전하다. 『문신공방 2』에 실렸기에 블로그에 올리며, 사실적 자료로서도 유의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I. 한류 현상의 실제와 범위 한류는 1990년대 말부터 한국의 대중문화가 동남아의 대중들에게 열광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한류란 국제적 규모에서 향유되는 한국 대중문화와 그 수용 현상을 묶어서 가리킨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국에서 제작되었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변별되는 독자적인 문화적 특성을 공유하며, 한국에서의 향유에 그치지 않고 낯선 외국의 수용자군의 많은 수가 탐닉하게 되어 세계적인 인정을 받게 된 대중문화들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