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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1950년의 한국전쟁이 왜 문제가 되었나? “세계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부차적이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내란’이 일어났을 뿐인데, 서양의 지식인들이 왜 그리도 법석을 떨었을까? 무엇보다도 그 전쟁이 한국인들의 골육상쟁이기에 앞서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냉전 체제의 시험장이자 파열구였기 때문이다. 그 시각에서, 한국 전쟁은 지구를 두 쪽으로 쪼갠 거대 이념의 사활을 건 싸움의 무대이자 또한 앞으로의 세계의 향배에 대한 상징적 지표로 기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념의 선택과 마주해 있던 서양 지식인들로 하여금 한국전쟁을 긴박한 눈길로 바라보게 하고 치열한 논쟁에 휘말리게 한 까닭이다. 정명환․시리넬리․변광배․유기환, 네 사람의 공동연구서(민음사, 2004)가 공들여 재구..

나는 책을 읽으며 세 번이나 생각을 바꿔야 했다. 그만큼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조한경 역, 문학동네)은 괴이한 책이다. 괴이하다는 것은 아름답고 맹랑하고 놀랍다는 뜻이다. 우선 아름다운 것은 이 책의 곳곳에 숨어 있는 번득이는 표현들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실수를 마약처럼 복용한다.”(p.31)라든가, “사물은 외눈박이의 지배력을 행사할 뿐이며, 새로운 진실이 어둠을 타서 폭풍을 지배한다”(p.176), “자아 의식은 본질적으로 충분한 내밀성의 확보이다. 그러나 내밀성의 확보는 속임수이다.”(p.232)와 같은 비유, 잠언, 반어는 신화와 역사 그리고 삶을 오래 반추해 본 사람의 깊은 사유의 심연에서 솟아난 통찰들이다. 이런 지혜를 얻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

정명환 역,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품은 재번역의 의의 한국의 번역문학은 지지부진하지만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것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재탕’을 폄박(貶薄)하는 한국인 특유의 순수주의와 번역에 대한 정책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화기 이래 전통적 사유틀의 붕괴로 인해 바깥 지식에 대한 욕구가 팽대(膨大)하였고, 또 그 욕구에 힘입어 바깥 나라의 외국어를 체득한 연구자들이 착실히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이 지지부진과 꾸준함이 미묘하게 얽힌 상태로 한국의 번역문학이 도달한 수준은 외국 문헌의 ‘정확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요 근래의 몇 차례의 번역 논쟁을 통해 여전히 오역과 역서선정기준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제 3국어(일어나 영..

올리비에 불누아(Olivier Boulnois)의 『존재와 재현 Être et représentation』(PUF, 1999)을 쉬엄쉬엄 읽는다. 13세기 말엽의 망각된 중세 신학자 던스 스코트(Duns Scot)의 저작에서 근대적 사유의 기원을 찾고 있는 책이다. 개요는 이렇다. 아랍을 우회하여 들어 온 아리스토텔레스는 종래 유럽의, 그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했던, 신학의 기본 개념들을 결정적으로 대체한다. 첫째, 순전히 사실의 수용만을 담당했던 인식에 의도성과 상상이라는 새로운 기능들이 첨가된다. 그럼으로써 진술이 사실과 일치하는가가 아니라 재현 가능성이 진리의 표지가 된다. 둘째, 재현자로서의 존재는 일의적이라는 것. 이로써 신과 인간의 통로가 열린다. 셋째, 지능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20세기 중반기를 풍미한 프랑스의 사상가․문학인들 중에 카뮈Albert Camus만큼 한국 독자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셍-텍쥐페리Saint-Exupéry는 청소년을 위한 작가였고, 보브와르Simone de Beauvoir는 여성들의 작가였다. 말로André Malrlaux는 명성보다 훨씬 적게 읽혔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나 그 영향은 지식 사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카뮈만이 유일하게 계층과 직업과 성별이 편중되지 않은 애독자를 가진 작가이다. 왜 그러할까? 태양의 눈부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Meursaut(『이방인L'étranter』)의 돌출한 행동 때문에? 아니면 역병이 만연한 도시에서 순교자적 열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