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시집 읽기 (26)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이 글은 ‘공시사’라는 인터넷 시 잡지에서 청탁해서 쓴 글이다. 원고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연락하더니 원고를 가져가고 발표 소식을 알린 후 감감무소식이다. 잡지 뜻도 ‘공정한 시인의 사회’라고 하던데, “이래도 되나?” 한심해 하다가도 “오죽 하면 그럴까?”라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 글은 한국 여성시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고 나름으로는 요량하고서 썼다. 한국시의 대화성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이 특별히 읽을만할 것이다.1. ‘여류시’란 곤혹스러움 허영자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이른바 ‘여류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1980년대 이전 한국 여성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느낀다. 1980년대 말 일군의 여성 지식인들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한국 여성..

※ 아래 글은 계간 『시와 함께』 2022년 여름호에 발표되었던 글이다. 수록 잡지가 '지난 호'가 되었기에 블로그에 올린다. 작년에 출간된 시집 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시집은 김유태의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문학동네, 2021.09)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 중 가장 짧은 시가 아래에 소개하는 「낙관(落款)」이다. 짧은 시를 택한 건 지면 때문이다. 불판 위의 껍질엔 도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헤프게 해동된 냉동육을 구우며 그는 아름다움에 대해 중얼거렸다 잔혹한 멍으로만 기억은 몸에 고이는 거란다 그것이 차가웠거 나 축축했던 사자들의 구조이다 구부정해지는 짐승의 출구를 그는 느리게 뒤집었다 질식할 듯 울음의 기억이 떠올랐고 나는 수긍할 수 없었다 육체는 비명의 감옥인가요 ..

※ 아래 글은 2022년도 김종철문학상 수상시집에 대한 심사평이다. 며칠 전 『문학수첩』 2022년 하반기 호에 발표되었기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블로그에도 올린다. 양애경 시인의 새 시집, 『읽었구나!』(현대시학, 2021)가 풍기는 시정(詩情)을 따라가다보면, ‘달관(達觀)’이라는 흔했던 옛말을 떠올리듯, 세속을 다 알아버린 듯한 마음새가 노골적으로 배어나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 심보를 가진 시인은 꼬마 도깨비처럼 온갖 세상살이의 속곳으로 파고들어가, 훔쳐 보고 살맛보고, ‘흐음, 먹을 만 하네’ 혹은 ‘에이, 별거 아니네’ 뇌까리고는, 그 등을 타넘으며 휘리릭 날아간다. 이런 활달함을 일으키는 것은 시인 특유의 눈조리개 운동이다. 그는 어린이의 시선과 늙은이의 시선을 포개 놓은 특이한 겹눈으로..

※ 아래 글은 2022년 이형기 문학상 심사평이다. 최문자 시인의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를 관류하는 기저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인의 원래 지향인 발견과 탐험을 향한 솔직담백한 충동이 활짝 피어서 그것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유로운 유랑을 떠나는 매 순간 자신의 존재 양태에 대한 반성적 질문들과 맞닥뜨린다. 그것은 그의 자유가 지나친 향유가 아닌가, 나는 타인들의 부자유에 책임이 없는가, 라는 물음에서 비롯한다. 이 물음 때문에 세상을 휘날리는 시인의 춤은 기우뚱 말리며 고즈넉한 숙고의 대롱을 만든다. 방랑 충동의 관성은 다시 그걸 풀어 자유의 부채를 펼치고, 다시 반성적 질문이 그것을 다시 마는 운동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그렇게 시인의 ..

※ 아래 글은 『현대시학』 2021년 7-8월호에 실린 글이다. 과월호가 되었기 때문에. 블로그에 싣는다. 시의 숨은 힘 풀아 날 잡아라 내가 널 당겨 일어서겠다 (천양희, 「풀 베는 날」『오래된 골목』, 창작과비평사, 1998, 9쪽) 천양희 시인의 이 시구를 읽은 게 20년도 넘었습니다. 시인은 풀을 베다가, 베어진 풀의 죽음이 다른 생명들의 거름이 되는 걸 생각하다가, 풀의 희생을 추념하다가, 문득 그게 아니라 풀이 단순히 제 목숨을 바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원소를 제 몸 안에 들인 존재들의 몸 안에 새로운 생으로 깃든 것이라는 생각에 눈이 뜹니다. 그리고는 그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풀의 신생이 참된 의미를 얻으려면, 그걸 소화한 이가 그 내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