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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예심을 통해 올라온 모든 시집을 다 말하지는 못하고 그 동안 이해가 부족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몇 권 골라 손끝 가는 대로 느낌을 두드려 본다. 김기택의 『소』는 환희는 물론 아니지만 슬픔도 아닌 세계, 어떤 몇 개의 정서들로 결코 요약할 수 없지만 그러나 전율적인 실감을 자아내고 있는 세계를 현상한다. 그 전율적인 실감 때문에 그 세계에서는 모든 감정이 배제되었는데도 억눌린 감정의 응집체 같은 것이 묘사의 울타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 세계는 결코 다른 것으로 변환되지 않고 눌어붙기만 하는 일과(日課)의 세계, 삶이라는 노역이 막막히 덧쌓이기만 해서 형성된 세계이다. 삶이 왜 이 모양인가? 모든 존재와 사물들과 사건들이 철저히 이질성의 상황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만남이 있으나 교통이 없고 ..
본심에 올라 온 시인들의 이름을 읽으며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연령층에 몰려 있었던 까닭이다. 연령 제한이 있느냐고 운영위원회에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그래요? 흐음. 그렇군요. 오늘의 시는 시의 이상이 숨어버린 시대를 포복하고 있다. 이념의 이정표들은 퇴색하여 기능을 상실했으며 형식적 규범들은 태깔 내는 기교들로 환원되었다. 그 덕분에 작금은 모든 시들이 저마다 이상적 시임을 자처할 수 있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포복의 결과로!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기다가 보면 머리카락 한 올 위의 가시철망이 섬망의 터널처럼 휭 하니 뚫려버리는 것이다. 시적 이상의 공동이 모든 시의 이상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시를 존재적 차원에 붙박아 놓음으로써 시적 산물 하나..

※ 아래 글은 2022년 이형기 문학상 심사평이다. 최문자 시인의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를 관류하는 기저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인의 원래 지향인 발견과 탐험을 향한 솔직담백한 충동이 활짝 피어서 그것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유로운 유랑을 떠나는 매 순간 자신의 존재 양태에 대한 반성적 질문들과 맞닥뜨린다. 그것은 그의 자유가 지나친 향유가 아닌가, 나는 타인들의 부자유에 책임이 없는가, 라는 물음에서 비롯한다. 이 물음 때문에 세상을 휘날리는 시인의 춤은 기우뚱 말리며 고즈넉한 숙고의 대롱을 만든다. 방랑 충동의 관성은 다시 그걸 풀어 자유의 부채를 펼치고, 다시 반성적 질문이 그것을 다시 마는 운동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그렇게 시인의 ..
낯선 만남 속에 열리는 얼굴들을 위하여 ‘아시아를 사랑하는 시인들 주최’, 한·아시안 시인 문학축전 Korean-Asean Poets Literature Festival,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Becoming』, 2010.12.2.~12.7 네 분의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의 주제가 우리의 행로를 묻고 있다면, 우리가 정말 행로를 몰라서 그런다기보다는 오늘 우리가 하나의 교차로에서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교차로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조금 낯설어 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대륙에서 비슷한 피부, 비슷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지 못할 까닭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교통 수단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
또 나뭇잎 하나가 그간 괴로움을 덮어보려고 너무 많은 나뭇잎을 가져다 썼습니다 나무의 헐벗음은 그래서입니다 새소리가 드물어진 것도 그래서입니다 허나 시멘트 바닥의 이 비천함을 어찌 마른 나뭇잎으로 다 가릴 수 있겠습니까 새소리 몇 줌으로 저 소음의 거리를 잠재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내 입술은 자꾸만 달싹여 나뭇잎들을, 새소리들을 데려오려 합니다 또 나뭇잎 하나가 내 발등에 떨어집니다 목소리 잃은 새가 저만치 날아갑니다 가을이다. 릴케의 참으로 경건한 가을도 있고 최승자의 “매독 같은 가을”도 있지만, 이런 가을도 있다. 바야흐로 침잠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현재의 생은 젖은 모래더미처럼 무겁다. 저 여름에 우리는 너무나 가볍게 살았던 것일까? 때마다 흥분하고 흥분할 때마다 대의와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