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겸연쩍게시리 덤을 덥석 안으며 본문
※ 2000년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소감.
지난 8일 팔봉 비평문학상이 저에게 주어졌다는 한국일보사의 사고(社告)와 함께 심사보고서, 심사평 그리고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무척 겸연쩍었습니다. 줄곧 남의 글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을 때, 그것도 논쟁적인 시비가 아니라 과분한 평가를 들었을 때, 물건을 사러 시장에 들어간 사람이 장바구니에 담겨 나오는 듯한 황망함이 스쳐지나가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 쑥스러움을 이기기 위해 찬사를 받는다는 건 욕을 먹는다는 것보다도 더 괴롭다는 생각을 억지로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이 쑥스러움이 심한 부끄러움으로 변해 가는 것을 느꼈으며, 급기야는 북북 긁어대고 싶은 붉은 염증이 얼굴 전체를 뒤덮는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염증의 씨앗은 지난 10년 동안 제가 알게 모르게 제 안에 키워 온 어떤 오기 혹은 오만함이었습니다.
그 오만함에 까닭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적 장벽의 붕괴와 사회 상황의 급격한 변모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90년대 한국 지식인의 표류와 문화산업의 회오리에 휘말린 문학의 환란에 대한 저 나름의 최선의 방어책이었습니다. 저는 저 표류와 환란에 대해 ‘시적 정의(詩的 正義)’라는 낡아빠진 무기 하나로 버티는 것만이, 그리하여 패배의 운명을 항구화시킴으로써 승리자들의 도취한 얼굴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불안의 그림자를 남기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일찌감치 마음을 접어두고 있었습니다. 『무덤 속의 마젤란』은 그렇게 아등바등 버티며 살아온 저의 생이 지나간 자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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