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현 (17)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황지우의 『나는 너다』 복간본에 대한 해설을 쓰느라 두 달을 다 써버렸다.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나는 그가 1980년대 말에 무슨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 고민이 그가 당연히 맞닥뜨려야 할 정당한 고민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와 고민을 공유한 사람이 당시에 극히 희귀했었다는 건 80년대의 한계를 그대로 지시한다. 어쩌면 나조차도. 나는 1988년의 「민중문학론의 인식구조」에서 그와 동일한 화두를 띄웠으나 그 이후 정반대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하튼 황지우의 시에 대한 얘기는 해설에서 지겨울 정도로 썼으니 그걸로 그치련다. 그 해설을 쓰면서 나를 내내 사로잡았던 다른 생각은 우리 세대가 김현 선생의 영향을 얼마나 깊이 받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기성 문화물의 해체·재구성..
"들어가보면 언어도 세상도 없고, 거북함, 불편함, 편안함, 즐거움의 감각적 깊이만이 있다." (3:88) 1 이 글을 쓰기 위해, 「김현 문학 전집의 편집 체제」(김현 문학 전집 제16권, 『자료집』, 문학과지성사, 1993)를 다시 읽다가, 나는 그 글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생님의 이름을 남발했음을 발견하고 잠시 놀란다. 가령, “그가 생전에 책으로 묶지 않았던 글들의 수집은 그가 남겨놓은 스크랩북 네 권을 토대로 삼았다.”고 써도 될 문장을 나는 “김현이 생전에 책으로 묶지 않았던 글들의 수집은 김현이 남겨놓은 스크랩북 네 권을 토대로 삼았다.”(3:43)고 씀으로써 꼬박꼬박 그이의 이름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런 예를 포함하여, 도처에서 ‘김현’은 마치 ‘봉무제’(윤흥길)씨의 ‘무제’처럼 박혀..

그 책(김현, 『한국문학의 위상』, 문학과지성사, 1977)을 나는 두 권 가지고 있다. 한 권은 서점에서 사서 읽고 감동했고 다른 한 권은 저자가 주어서 감격했다. 그 책이 감동의 샘이 되었을 때 나는 저자에게 홀린 문학도였다. 어떤 감동도 무조건 오지는 않는다. 감동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 의지는 감동의 기미라고 말할 수 있는 기이한 감정의 안개 속에서 태어난다. 감동의 기미, 그러니까, 조산된 감동의 분비물들은 그 책 이전의 저자의 책들, 『상상력과 인간』, 『사회와 윤리』, 그리고 김윤식 선생과 공저한 『한국문학사』 등을 읽으면서 스며 나왔을 것이다. 그 책들은 문학과 삶의 관계에 대한 나의 경직된 고민을 교정해준 책들이었다. 저 유명한 ‘순수’와 ‘참여’의 싸움이 그것이었는데, 경직된 관점..

가고 온다. 무엇이 가고 오느냐 하면, 김현이 가고 온다는 것이다. 김현은 1990년 6월 27일 새벽에 음침하게 매복해 있던 죽음과의 줄다리기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꼬박 3년 만인 엊그제 27일 김현 문학 전집 전 16권이 완간되었다. 전집 완간과 더불어 김현은 마침내 다시 왔다. 물론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오지는 않았다. 김현 전집은 1991년 6월부터 6개월 간격으로 모두 5차례에 걸쳐 출판되었다. 김현은 그가 죽은 날로부터 지속적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파도는 3년 동안 죽음과 삶 사이의 방파제를 두드린 끝에 드디어 범람하였다. 그 해일, 그것은 지금․이곳의 세상을 소리없이 넘실댄다. 귀가 그것을 부인해도 몸은 그 은은한 파동의 떨림을 들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진동에 당황하..
김현 선생은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쓴 첫 세대의 비평가였다. 그 한글은 세종의 훈민정음도, 『독닙신문』의 ᄒᆞᆫ글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생활에 뿌리내린 한글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민족국가로서의 한국이 불구였듯이 우리의 한글도 아직 대가 약했고, 외국어의 범람 속에서 위태로웠다. 김현 선생은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적이지 못한 언어로 ‘민족’의 문학을 외쳤을 때, 그이는 민족문학의 실체를 글로 보여주었다. 선생이 하신 크고도 다채로웠던 모든 작업들은 이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김현 선생은 문학평론가였고, 문학사가였으며, 문학 연구가였다. 평론가로서의 그이에게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