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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이 글은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획의 말’로서 씌어진 것이다. 필자가 집필하고 ‘대산세계문학 발행 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채택되었고, 현재 ‘대산세계문학총서’의 모든 책의 말미에 수록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에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었다는 판단하에 이 글이 유의미하리라 판단해 올린다. 21세기 한국에서 ‘세계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자국문학 따로 있고 그 울타리 바깥에 세계문학 따로 있다는 말인가? 이제 한국문학은 주변문학이 아니며 개별문학만도 아니다.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1973)가 두 개의 서문을 통해서 “한국문학은 주변문학을 벗어나야 한다”와 “한국문학은 개별문학이다”라는 두 개의 명제를 내세웠을 때, 한..
※ 이 글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접해, 매일경제 10월 11일자에 '한국문학 가뭄 끝 단비 … 한강 소설은 찢긴 역사 고스란히 불러내는 도정'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글이다.“가뭄 끝에 단비”라는 우리 속담이 이렇게 맞춤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도 곱으로 그렇다. 10일 저녁 스웨덴으로부터 날아온 소식은 혼탁한 정치판과 사고뭉치 SNS로 인해 더럽혀진 눈과 귀를 단김에 씻어주었다. 이 비는 청정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문학의 오랜 갈증을 마침내 해갈한 상쾌한 소나기였다. 노벨문학상이 문학의 최종 가치를 보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건 문학 그 자체에 있지, 문학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오늘 확실히 새길 것은 한국문학이 오래도록 기다려온 이 낭보를 품에 안은 한강의 문학이 한국문학의 고유..
프랑스는 통상 매해 9월에 소설들을 쏟아낸다. 그래서 이를 두고 ‘문학의 계절이 돌아오다 La rentrée littéraire’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의 소식지(2024.08.23.)에 의하면 올해 9월의 소설출간작은 459종이리고 한다. 작년의 466종에 비해 7종이 줄었고, 기록을 경신했던 2010년의 701종에 비하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resserrée”는 탄식이 사방에서 들린다고 한다. 하지만 ‘소식지’의 필자, 엘리자베트 필리프Elisabeth Philippe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다. 459종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 이중에서 어떤 작품을 고를 것인가? 작가의 명망을 보고 사면 틀림없이 “완벽히 실망”하리라고 주..
※ 이 글 역시 앞의 글과 마찬가지로 김혜순 시인의 『날개환상통』(문학과지성사, 2019)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The National Book Critics Circle·NBCC) '시부문'에서 수상한 걸 계기로 올린다. 이 글 또한 필자의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 - 내가 사랑한 시인들 세 번째』(문학과지성사, 2020)에 수록되었다. ‘나무’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서 가장 뿌리 깊은 이미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한 사전에 의하면 나무는 “가장 풍요하고 가장 널리 퍼진 상징재 중의 하나[1]”이다. 사전의 집필자는 이어서, 엘리아데Mircea Eliade가 ‘성스러운 것’과 만나려는 인류의 심성은 그것이 지상에 자리잡을 수 있는 중심의 자리..

※ 김혜순 시인의 『날개환상통』(문학과지성사, 2019)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The National Book Critics Circle·NBCC) '시부문'에서 수상했다. 크게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다. 순수한 시적 성과로 세계시인의 반열에 그는 올랐다. 그의 경사가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궤도 안에 진입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아래 글은 김혜순의 시가 가진 변별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올려 본다. 이 글은 필자의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 - 내가 사랑한 시인들 세 번째』(문학과지성사, 2020)에 수록된 글이다. 김혜순의 시는, 인종․장애와 더불어 오늘날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 하나를 구성하고 있는 여성성의 첨예한 측면들을 농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흔하고 쉬운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