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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김희원의 「가을을 즐기지 못 하는 딱 하나」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바깥의 풍경을 세계의 의미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세계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소망과 행동으로 경계를 신축(伸縮)하고 색채를 바꾼다. 정서와 외관의 조응이 실감을 준다. 하지만 기본 태도가 동시(童詩)적이지 않은가는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동시는 이미 있는 세계 속에서 노니는 데에 만족하지만, 시는 새로운 세계를 여하히 창조할 것인가 하는 고투에 뛰어든다. 고은비의 「스물 하고도 일곱」은 세상과의 소통에 곤란을 겪는 젊은이의 의식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언어의 작란을 통해서 이 곤란을 유희로 치환하여, 소통불가능을 실연하는 한편 동시에 그 불가능성을 견디어내는 인물의 잔꾀를 재치있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대한..
투고된 다섯 편의 글 모두 문장이 불투명하고 오문마저 섞여 있었다. 타인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재구성해내는 일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게 한다. 신진용의 「황병승론 - 근작 시집 『육체쇼와 전집』을 중심으로」는 난해한 시세계의 핵심을 허상에 대한 탐구로 짚어내고 그 증거를 제시한 평론이다. 날카로운 관찰이지만, 단 하나의 어휘로 한 시인의 세계를 모두 규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결론 부분은 급작스럽고도 상투적이다. 마치 쓰다만 듯한 글이었다. 임수현의 「존재와 부재로 짜여진 아홉 편의 단편 - 앨리스 먼로 단편집『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 대한 문학 평론」은 먼로의 소설에 대한 흥미로운 형태 분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형태에 부여한 세 가지 의미가 명확히 구별되지 않았고, 따라서 먼로 소설의 ..
김상균, 김태우, 성시룡, 신상철, 안상원, 양재기, 오주훈, 이석형, 이재익, 이준혁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문장이 부정확하거나 신변잡기에 머물거나 구성의 비례가 불균형을 이루거나 사건이 억지스러운 결점들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송다금의 「기억을 잃은 세상」은 과학소설의 형식을 통해 기억 조작의 욕망을 보편 심리의 차원에서부터 사회적 범죄의 차원에까지 넓은 스펙트럼 위에 조명하였다. 하지만 핵심 사건 둘의 관계가 그럴듯하지 못해 실감을 떨어뜨렸다. 김동규의 「모든 것의 붕괴」는 청소년 마약을 다룬 소설이다. 마약으로 인해 벌어진 엽기적인 사고의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과장된 인물들의 태도 및 행위가 사회 비판보다는 흥미를 자극하는 성격이 짙은 게 흠이었다. 김..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시적인 감성이 풍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를 만들어내는 능력까지 함께 갖춘 건 아니다. 좋은 시의 수준에 다가가려면 시적 충동을 조직적으로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언어의 적확한 구사, 감정의 조절, 도식적인 비유를 뛰어넘는 연습, 상투적이지 않은 표현들의 개발, 절제된 수사 등이 그런 훈련의 필수과목들이다. 그 중에서도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여 감각적 표현으로 치환하는 건 초입에 놓인 가장 어려운 관문이다. 김규일, 김동현, 김세종, 김현지, 서자헌, 승형수, 최덕천, 최종수, 한재환의 투고작들은 시적 감각의 구비를 증명하고 있다. 다만 그 감각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려면 오랜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박민혁, 박연빈, 백지원, 서종욱, 서지혜, 염선호, 우재영, ..
시 부문에서는 김준호, 김현지, 심민관, 조원희, 조윤강의 작품들이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토로하고 있었다. 다만 시는 마음의 드러냄이되,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의식적 실천임을 유념해주기 바란다. 그 의식적 실천의 효과는 단순히 의지나 다짐만으로는 달성되지 않으며 사물과 환경 속으로 그 마음을 끌고 들어가 또렷한 실감 혹은 객관적 상관물을 획득할 때 가능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최종 검토 대상이 된 작품들인 박연빈의 「무릎 관절 사이」, 전아영의 「오필리아」, 조윤아의 「플라스틱 우주」는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작품들이다. 박연빈의 시는 젊은 여성의 육체적 충동과 불안을 정직하게 감당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그 자체로서 일종의 거울로서 기능해 그 충동과 불안을 삶에 대한 모험으로 바꾸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