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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요 며칠 동안 몇몇 신문에서, 기 소르망Guy Sorman이 영국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화하였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성착취’를 폭로했다는 충격적인 문구가 들어 있었다. 문제의 인터뷰는 소르망이 최근에 발간한 저서, 『엿같은 것들에 관한 내 사전 Mon dictionnaire du Bullshit』(Grasset, 2021.02)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구해서 보았더니 그 책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중 인격double morale’을 비난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푸코에 관한 이야기는 ‘소아성애Pédophile’라는 장에 나온다. 처음에 2020년 프랑스 문화계를 들쑤신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과 가브리엘 마츠네프Gabriel Ma..

※ 이 글은 계간, 『문화와 나』(삼성문화재단) 2020년 가을/겨울 호에 「감염병의 인류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것이다. 잡지가 간행된 지 시간이 꽤 흘렀다고 판단되어, 블로그에 싣는다. 1. 미래가 없는 인내 옥스퍼드 출판사의 ‘짧은 소개’ 총서에 포함되어 있는 『팬데믹Pandemics – 매우 짧은 소개』는 ‘감염병’에 대한 기술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감염병은 통상 특정한 시기에 예기치 않게 일어나 광범위하게 퍼진 질병 사고를 말한다[i]. 그러니까 감염병은 ‘사고’다. ‘사고’의 성격은 ‘예측할 수 없었다’는 데에 초점이 놓인다. 미리 대비할 수 없고, 원인을 모르니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대강의 윤곽을 그려보기도 전에 지나가 버린다. 지구상의 생명이 사고를 견딜 수 있는 ..

‘진실’이라는 단어를 처처에 박아 놓은 어떤 책을 읽다가 “김수영은 혁명은 안 되고 당만 바꿨다고 개탄했”다는 구절을 읽고 기가 막혔다. 김수영은 “방만 바꾸어 버렸다”고 말했지, ‘당’을 바꾸었다고 하지 않았다. 왜 이런 오류가 일어났는가? 기억의 착오일 수도 있겠으나, 김수영의 시를 실제 읽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면, 다시 한번 한국 지식인들의 얄팍함을 ‘개탄’하게 할만한 일이다(김수영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가 그런 말을 하리라는 걸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고위 관료가 은퇴를 하면서 TV에서 지나온 시절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그 안에 ‘내 인생의 화두’라는 항목이 있었다. 고위 관료가 빈 칸에 ‘윤동주’를 적고는 윤동주의 시 한편을 들었다. TV 화면에..

옛 친구 강남옥 시인이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했다.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2 주 전 일이다. 마지막으로 본 건 40년 전이었던가? 그리고 오늘 그이의 새 시집, 『그냥 가라 했다』(산지니, 2020.11)를 받았다. 시집을 읽으면서 이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마음을 짠하게 느낀다. 이 땅에 사는 시인들이 자신이 한글로 시를 쓰고 있는 중이라는 걸 특별히 의식하던 시절은 한참 지났다(아마 김수영 세대가 마지막일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의 한국 시인들에게 한국어 글자는 생존의 바로미터가 아니다. 그들이 그 언어를 특별히 생각하는 것은 생존 쪽이 아니라 생산 쪽이다. 즉 한글은 풍요한 상상세계를 이룩하는 데 쓰일 알곡들이다. 반면 외국 거주의 시인에게 모국어는 오늘의 모습을 근원에 연결해주는 절대적..

고(故) 신동준이 역주(譯註)해서 펴낸 『순자론』(학오재, 2009)을 읽다가 오늘의 한국 정치 현실을 풍자해서 유명해진 어떤 글의 생각과 맞물리는 게 많아, 이게 불변하는 세상의 풍경이려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허탈해진다. 한 대목을 인용한다. 난세의 징후는 이와 같다. 사람들이 옷은 조(組: 문양이 있는 넓은 띠로 사치를 의미)하고, 그 용모는 모두 부인을 모방하고[1], 그 풍속은 음란하고, 그 심지는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 행동은 열악하고, 그 성악(聲樂: 음악의 곡조)은 험악하고, 그 문장(文章)은 특채(慝采: 내용이 간특하고 辭藻가 화려함)하고, 그 양생(養生: 생활)은 무도(無度: 절도가 없음)하고, 그 송사(送死)는 척묵(瘠墨: 簡薄, ‘墨’은 묵자를 상징)하고, 예의를 천시하며 용력(勇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