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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한국시인협회에서 발간하는 『한국시인』 2022년 가을, 겨울호에 발표한 것이다. 잡지가 발간된지 시간이 꽤 경과했다고 판단하여, 블로그에 싣는다. 1. 시정신을 이용하는 정치공학 ‘시정신(詩精神)’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아마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샤를르 보들레르가 1856년 1월 9일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정신과 기사도적 정념보다 세상에서 더 소중한 건 없습니다”[1]라고 썼던 일이리라. 이 널리 회자된 구절에서 ‘시정신’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문구 안에는 별도의 정의가 없기 때문에 이 인용문만 접한 사람은 ‘기사도적 정념’과 유사한 어떤 정신을 가리킨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기사도적 정념’ 역시 모호한 용어이긴 마..
※ 아래 글은 2015년 9월 16일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에서 열린, ‘디지털 시대의 사생활’을 주제로 한, 독일과 프랑스의 두 학자의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으로 작성된 것으로, 필자의 평론집, 『뫼비우스 분면을 떠도는 한국문학을 위한 안내서』(문학과지성사, 2016)에 실려 있다. 최근 카카오 데이타 센터 화재와 관련하여 참조가 될까 해서 올린다. 사생활의 보호를 넘어 디지털 문명의 자주관리로 울리케 아케르만 Ulrike Ackerman, 안토니아 카질리Antonio Casilli, 두 분의 발표 잘 읽었습니다. 두 분의 글 모두 디지털 시대에 사생활이 크게 위협당하고 있다는 상황을 확인하고 이 위협이 곧 인류의 소중한 가치인 자유에 대한 침해임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정의 명료한 ..
최근에 무슨 표절 사태가 있었나 보다. 새벽부터 우리 과의 유 시어도어 준 교수가 '카카오톡'으로 나를 불러내어 표절 현상에 대해 물어봤다. 유교수와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다가(매우 시니컬하고 자조적인 그래서 썩 많은 웃음을 함유한 대화였으나, 지극히 사적인 내용들이 있어서 공개할 수는 없다), 김수영의 「시작노트 6」을 읽어 보기를 권하였다. 아래는 김수영의 글의 일부이다. 나는 번역에 지나치게 열중해 있다.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 내 시가 번역 냄새가 나는 스타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비밀은 그런 천박한 것은 아니다. 그대는 웃을 것이다. 괜찮아. 나는 어떤 비밀이라도 모두 털어내 보겠다. 그대는 그것을 비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약점이다. 나의 진정한 비밀은 나의 생명밖에..
※ 아래 글은 지난 3월 18일 돌아가신 정명환 선생님에 대한 추모글로서 '현대문학' 5월호에 발표되었다. 과월호가 되었기에 블로그에 싣는다. I. 입학한 지 1년 반 후, 불어불문학과에서 강의를 듣다. 1975년이었다. 한국이 한창 경제성장 중인 줄은 나중에야 알았고 반은 농촌이고 반은 도시인 동네에서 자라면서, 대충 어림해서 사회적 야만 상태를 거의 벗어나지 못한 수준을 맴도는 나이에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3월에 입학식을 치르고 학우들과 통성명하고 수업을 하면서, 나는 한국의 대학 신입생은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대학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서 그것을 딛고 보다 높은 지위를 향해 뜀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대학을 고등학교 때까지 대학 입학을 위해 묵혀두기만 했던 온..
※ 아래 글은 인터넷 매체, '컬럼니스트' 5월 11일자로 발표된 글이다. '컬럼니스트'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다른 길을 간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하여 김지하 선생이 돌아가셨다. 편찮으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소문으로 돌았지만, 선생은 끈질기게 죽음과의 줄다리기를 이어 나가셨다. 선생의 병을 걱정하시던 사모님, 즉 토지문학관의 김영주 관장님이 2019년에 먼저 돌아가셔서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생전에 부부의 정이 무척 애틋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 해 10월에는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강연 때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까지 부부가 함께 오셨었다. 선생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을까? 그이는 1980년 감옥에서 나오면서 민족문학 대신 생명사상을 들고 나왔다. 그이의 생명 사상에는 죽음에 반대하는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