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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지난 8일 돌아가신 김지하 선생의 추모글로서 '경향신문' 5월 11일자에 실린 글이다. 민주화의 상징이자 생명 사상의 척후병 김지하 선생은 말년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한국 분단 뒤의 ‘산업화’를 추진한 박정희와 정면투쟁의 ‘40년 민주화’를 추진하며 늙어버린 미학 지향의 시인이다.” 필자는 그 말을 이렇게 옮긴다. “김지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생명 사상의 척후병이었다.” 가난했던 대한민국. 분단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독재가 칙칙한 장막을 세상 아래로 드리웠을 때, 그걸 찢으며 전면적인 근대화와 민주화를 요구하고 관철시킨 것은 4.19 혁명이었다. 다음 해 5.16 세력이 경제 중심의 근대화를 내세우며 새로운 형태의 독재를 진행하자, 두 개의 정신은 사생결단의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정..
※ 아래 글은 제52회 동인문학상 제 9차 독회에 제출된 심사의견의 수정본이다. 초고본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동인문학상 대상작 검토 주기는 전해 8월부터 당년 7월까지이다. 2021년 동인문학상 독회는 올해 7월 출간작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으로 끝난다. 마감을 하면서 오랫동안 망설였던 얘기를 하고자 한다. 한국문학은 시방 근본적인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지난 9월 10일자 『조선일보』에서 이기문 기자가 쓴 「그 많던 문학 밀리언셀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근래 10여년 간에 진행된 한국소설 판매량의 급감은 독자들이 한국문학에서 전면 철수를 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이 위기의 원인들과 상황은 단일..
프랑스의 김순기 화백으로부터 장-뤽 낭시(Jean-Luc Nancy)가 8월 23일 돌아가셨다는 메일을 받았다. 1940년생이시니, 81세에 생을 마감하신 셈이다. 슬픈 일이다. 그는 대중적으로 이해되기가 어려웠으나, 높은 수준의 사고력으로 세계의 문제와 향방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내놓았다. 생각나는 대로 적자면, 특히 그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통해서 철학사 혹은 인간 정신의 역사에 오랫동안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할 것이다. ▶ 필립 라쿠-라바르트 Philippe Lacoue-Labarthe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 지적 사유에 있어서 협업의 효능을 입증하였다. ▶ 이 공동작업의 결과로서, 라깡의 「무의식에서의 문자의 심급 또는 프로이트 이후의 이성」에 대한 독해의 결과인 『표제로서의 문자Le titre de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2회 2021년 7월 독회의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 전반적 인상 작가 자신과 주변에 대한 고백적 글쓰기가 일종의 유행처럼 퍼진 게 상당히 오래 되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터지고는 한다. 이런 현상을 보다가 문득 프랑스의 한 작가가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때 신비평의 맹장이자 사르트리엥Sartrien이었던 세르쥬 두브롭스키Serge Doubrobsky는 1980년대 말년부터 소설가의 길을 걸었는데, 높은 평가를 받아서, ‘메디치 상’을 비롯 유수한 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한데, 그는 ‘자기허구 autofiction’라는 용어의 창안자로 문학사에 등록되었..
요 며칠 동안 몇몇 신문에서, 기 소르망Guy Sorman이 영국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화하였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성착취’를 폭로했다는 충격적인 문구가 들어 있었다. 문제의 인터뷰는 소르망이 최근에 발간한 저서, 『엿같은 것들에 관한 내 사전 Mon dictionnaire du Bullshit』(Grasset, 2021.02)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구해서 보았더니 그 책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중 인격double morale’을 비난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푸코에 관한 이야기는 ‘소아성애Pédophile’라는 장에 나온다. 처음에 2020년 프랑스 문화계를 들쑤신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과 가브리엘 마츠네프Gabriel 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