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프랑스의 표절 사태 본문

구름의 글

프랑스의 표절 사태

비평쟁이 괴리 2011. 9. 30. 05:18

지금 프랑스 문학판은 마가진 리테레르Magazine littéraire편집장 조셉 마세-스카롱Joseph Macé-Scaron의 표절 사건으로 시끌벅적하다. 언론에서 단신으로 다룰 때만 해도 잠시 후 잊혀질 미풍의 해프닝인 줄 알았는데, 단신들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이제는 국가적 후안무치에 대한 성토의 상황으로까지 커져, 르 몽드의 지난 주 금요일 판 북 섹션에서는 한 면을 통째로, “표절자들의 낙원이 되고 만 프랑스의 고질을 파헤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베아트리스 귀레Béatrice Gurrey가 쓴 르 몽드의 기사에 의하면, 문학 교사인 에블린 라루스리가 미국으로 바캉스를 가면서 읽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웃기는 미국인들(2001)의 몇 대목이 올해 나온 마세-스카롱의 저서, 통행증Ticket d’entrée에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복사되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미디어 감시센터인 아크리메드Acrimed’이미지 제동Arrê̂t sur images에게 알리는 데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이후 폭로가 쉴 새 없이 이어졌는데, 최종적으로는 엑스프레스 97일자 신문에서, 마가진 리테레르의 편집장이 자기 동료들의 글을 주기적으로 표절해왔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기자의 글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표절 문제에 대해 한심할 정도로 둔감하다는 데에 대한 개탄으로 이어졌다. 표절자로 지목된 당사자는 최근 들어 가장 잘 나가는편집자였다. 그는 마리안느지의 부주간도 겸했고, 또 몇몇 미디어의 사회자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공개 해명을 한 것 외엔, 어떤 직책에서도 물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당사자도 문제지만 그걸 대하는 프랑스 지식판의 전반적인 느슨하고 관대한 시선이 더 심각한 문제인 모양이다. 오늘의 당사자에게 올 6월 상을 준 ‘12인의 저널리스트모임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다룰 생각이 없고, 또한 표절이 확인된 작가에게 큰 문학상이 스스럼없이 수여되는게 일반적인 풍토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기묘한 계급 의식esprit de caste’(?)(특정한 상위 집단에 속하는 자들의 동류의식)이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내 느낌 하나
.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 표절에 대해서 행하는 엄격한 조치를 염두에 두자면, 프랑스인들의 이런 태도는 기이할 지경이다. . 조셈 마세-스카롱의 글을 읽으며 여러 번 감탄했었는데, 표절자라니!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종종 그런 검은 유전자를 발견할 때마다 존재한다는 곡예의 아찔함에 기분이 착잡해진다. .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표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경계가 점차로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표절도 표절이려니와 진상 파악이 매우 엉뚱하고도 부실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적인 단죄와 프랑스적인 관용(차라리 게으름으로부터 오는 무관심)과 오로지 한국적인 사도-마조히즘이 대책없이 뒤섞인 광경들이 자주 연출된다는 것이다.(201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