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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글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논쟁

비평쟁이 괴리 2012. 1. 29. 15:59

얼마 전 국가의 입장을 결정하는 몇몇 자리에서 한국의 지식층 및 지도층들 사이에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냐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는 게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졌었다. 그런 논쟁은 당황스러운 데가 있다. 민주주의에는 당연히 자유가 핵심 의미소로 자리 잡고 있는 터에 어떻게 쓰든 무슨 상관인가, 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고, 거기에서, ‘자유를 빼자고 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굳이 거기에 그걸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또 그들대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게 분명하고, 그 다른 생각들이 야기한 갈등은 한국사회의 미묘한 사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마침 송호근씨가 시세처지가 중요하다(세계의 문학, 2011년 겨울)라는 글에서 이 문제를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엄밀하게 말하면 자유민주주의다. 민주주의(democracy)는 대중(demos)과 통치(kratos)의 합성어로 인민대중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여기서 인민대중의 통치가 성립하려면 개인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라는 이 전통적 사상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p.430)는 진술은 핵심을 짚고 있는 말이다. 나는 이 내용이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어느 자리에서든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호근씨가 유길준에 기대어서 시세처지를 감안해 자유민주주의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도 일리가 없지 않다. “왜 구태여 한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고집하는가? 한국의 국체를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진술은 그렇게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자유민주주의가 국체를 정확하게 지시하는 나라는 한국말고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주장의 요지는 다음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스스로를 인민민주주의로 지칭하는 상황에서 한국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처지에 따른 당연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 그럴 근거가 헌법 조항에도 명시되어 있다. 역사 서술을 그냥 포괄적 개념인 민주주의로 대체하고자 한다면, 헌법을 우선 고쳐야 하는 번거로움과 정치적 투쟁, 사회적 혼란이 따른다”(p.431.)

좀 지나치게 나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납득할 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글이 이상하게 번잡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너무 많은 고려할 것들 속에는 서로 상충되는 것들이 자못 있지 않은가?

나로서는 한국인의 집단적 아비투스에 비추어, ‘자유의 개념은 명시적으로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가 생활적 차원에서 시작된 것은 겨우 20여년에 불과하며, 우리의 정신과 습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전 시대의, 특히 유교적인 습속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습속은 민주주의의 실행적 정의인 인민대중에 의한 통치가 인민 각 개인들의 자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어떤 보편적 섭리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한다. 실제로 나는 부지중에 그런 태도를 표명하는 지식인들을 많이 보았다. 또한 나는 그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소위 인민 대중, 혹은 익명의 대중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익명의 대중들이 발산하고 있는 열기는, 자신의 자유를 실천한다기보다는 저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보편적 진실을 세상에 적용하는 데서 만족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가진 자의 권리의 행사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된 타자들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하든, 그것을 느낄 일도 관심을 가질 일도 없다는 태도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는 인간이 결코 진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왜냐하면 자유는 무엇을 가지는 게 아니라, 무엇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자유 자체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란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가 진리를 향하여 자신을 투신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자유는 소유의 항목이 아니라 실천의 항목이다. 또한 진리는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자유를 실천하는 존재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여는 지평이다. 인간이 자신을 던져 완성해야 할 텅 빈 무대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고 하는 흔한, 그러나 동시에 흔히들 망각하는 얘기는 이 점을 듣기 편한 말로 치환한 것이다.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존재, 즉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된 존재는, 우리가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 타자이다.

이런 자유의 본뜻을, 그리고 자유와 진리의 관계를 최소한이나마 감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비추어 불 때 지극히 희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날이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이 그걸 증명하고도 남는다. 민주주의의 속성으로 자유가 명시되어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소이이다. (201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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