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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사실주의 -이순원의 『얼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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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사실주의 -이순원의 『얼굴』

비평쟁이 괴리 2022. 12. 2. 10:17

이순원의 얼굴』(1993)을 통독하고 나니 그가 무척 의뭉한 작가임을 알겠다. 그 까닭은 그의 소설의 사실주의적 특성 뒤에 몰래 숨어 있다. 실로 그는 한국사회의 중요한 소재들을 두루 다룰 줄 아는 희귀한 재능을 가진 작가이다. 분단, 계급 갈등, 광주, 소비사회의 익명화, 노인 소외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그의 손끝에서 진상을 드러낸다. 그 사회적 문제들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아주 넓다. 수난자와 가해자, 참여자와 관찰자의 시선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서술의 철저성도 특기할 만하다. 말씨의 정확성과 어조의 다양성은 그의 소설이 꽤 오랜 탁마 끝에 나오는 것임을 능히 짐작하게 해 준다. 그는 이러한 사실주의적 관심의 다양성과 철저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선명하게 문제화시킨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소설의 표면일 뿐이다. 여기까지 이르러 문득 그의 사실주의는 정도를 넘어선다. 작가 자신을 포함하여 실제의 인물들의 이름이 직접 거명되는가 하면, 신문기사, 방송 화면, 주민등록증이 수정 없이 인용된다. 사실주의는 철저해지는 것 같지만, 실은 극단적으로 가장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과 실제의 사건을 직접 따오는 것은 보편성을 훼손시킨다는 것이 사실주의의 오랜 노하우이기 때문이다. 그 비결을 아는 사실주의 작가들은 결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을 다룬다. 그 개연성의 세계가 더 사실적일 수 있는 것은 보편성이, 다시 말해, 환상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 기본적인 의미로도, 사실주의가 그리는 세계는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다. 바르트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다만 현실성의 효과를 생산할 뿐이다. 그 모든 디테일의 정확성, 성격의 개별성, 줄거리의 일관성이 가리키는 것은 이곳은 현실이다라는 단 하나의 의미이다.

그런데, 얼굴의 작가는 사실성을 극단화시킴으로써 사실성을 거꾸로 배반한다. 그리고, 그러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은 일관성의 외양 밑에 무수한 단절과 굴절을 감추고 있다. 화자의 목소리는 이야기꾼의 신명과 참여자의 고통 사이에서 탁해지고 관찰자의 호기심은 가해자의 죄의식으로 억색해진다. 말들은 단속적으로 끊어져 갑작스런 가슴의 고통으로 전이되고, 아차 싶어 물러나려 할 때는 이미 혼란과 고뇌의 늪 한복판이다. 왜 작가는 그렇게 하는가? 바로, 사실주의의 환상이 가능하게 해주는 공중으로의 탈출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을 그리는 자의 자의성에, 혹은 결국 이미 끝난 남의 이야기일 뿐인 것을 읽는 독자의 무책임에 동참과 책임의 질긴 그물을 던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도의 저변에는 한국인의 개인사와 사회사의 이원성, 나의 수난의 역사와 타자의 가해의 역사, 대리 폭력의 역사와 내 핏줄의 억울함의 역사가, 실은 한 몸인 채로, 어긋나 있다는 데에 대한 작가의 깊은 성찰이 깔려 있다. 실제 이순원 소설의 요체는 바로 거기에, 즉 그 이원성에 대한 해부와 성찰의 집요한 변주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독자에게 맡겨두는 것이 현명하리라. 함께 겪어보자고 작가가 당신께 청하고 있으니 말이다.

󰏔 1993. 4. 14, 한국일보, 독자의 무책임에 책임 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