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이수경의 『자연사박물관』 본문
아래 글은 2020년 6월 동인문학상 독회에 제출된 나의 작품 추천 의견이다.(조선일보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지만,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이수경의 『자연사박물관』은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대책없는 몰락을 꼼꼼히 묘사하고 있다. 불행을 야기한 물리적 사실들을 꽤 ‘조직적으로’ 배경에 깔고서, 그로부터 유발된 한 가족의 절박하게 허둥거리는 마음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소위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열심히 좇다가 보면 필경 현실에 배반당하고 만다’는 힘없는 사람들의 실제 현실을 적확하게 반영하는 것이라, 이보다 더 핍진한 걸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걸핏하면 문제 해결의 전망을 보이라고 억압하는 정치꾼들의 기세야말로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그런 으름장들이 증강현실이라도 되는 양 문학에도 통용되는 게 꽤 오래된 한결같은 세태다(세상이 한참 변해서 이젠 아닌 것 같지만, 진짜 그렇다.) 『자연사박물관』의 가족들은 그런 압박에도 떠밀려서도 더 한정없이 추락하고 있다. 추락하면서 지면 위에 가난의 풍경을 안쓰럽게도 선명한 홀로그램으로 띄어올린다. 그 풍경 속에서 독자는 간간이 약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 삶을 보듬고 가꾸는 가난의 문화를 편린의 형태로 엿볼 수 있다. 그 가난의 문화는 뭉개지기도 하고 슬그머니 피어나기도 한다. 뭉개지고 피어나면서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바뀐다. 다시 말해 꿈틀거린다. 그것이 이 작품의 심리적 현실 위에 또 하나의 현실을 배접한다. 이 작품의 울림이 꽤 웅숭깊은 것은 그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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