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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김병운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비평쟁이 괴리 2020. 6. 8. 07:01

김병운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민음사, 2020.04)에 대한 감상.

 

1. 동성애라는 현대적인 주제를 얼핏 보기에 매우 낡은 형식으로 추적한 소설. 형식적인 보완으로 다면(多面)접이병풍형식을 빌려 왔으나, 그것은 이미 과거에 자주 시도되어 왔던 형식으로 새로울 것이 없음.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낡은 형식에 갇힌 이야기가 썩 자연스럽게 읽히고 강렬한 몰입을 유도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 인식 및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함.

 

2. 이런 힘의 까닭: 첫째, 동성애 문제를 정면에서 쟁론적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 동성애 소설들이 체험적으로 혹은 향유적으로 특정 부분에 중점을 둠으로써 독자를 자극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이 작품을 지적인 소설로 만드는 원인.

둘째, 생각의 넓이와 깊이: 동성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스펙트럼을 거의 다 조명했으며, 동서애 혐오가 자욱히 깔려 있는 한국적 현실 안에서의 동성애자들의 태도의 스펙트럼도, 지금까지 나온 어떤 동성애 소설보다 훨씬 넓게 살피면서, 그 태도들의 변화의 궤적을 끈질기에 탐구하여 소설적 깊이를 획득하였다.

셋째, 절제: 방화범을 한 때 동성애자였던 동성애혐오자로 둔 것은 이 작품을 센세이셔날한 사건으로 끌고가지 않겠다는 의도와 동시에 가능한 한 이 문제를 객관적인 지평에 놓고서 성찰하게끔 하겠다는 효과를 보임. 동시에 강은성의 인터뷰로 끝냄으로써 강은성의 후일담을 제공하지 않아, 이 인물의 사건이 신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함.

 

3.약점: 맨 앞에 등장하는 인물, 양병진이 순전히 김미승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기능적 장치로서만 주어져서, 도입부를 비롯 양병진이 등장하는 대목들이 의미가 약화되었으며, 또한 도입부에 그를 내세움으로써 독자를 헛김 빠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것도 일종의 낯설게 하기인지 모르겠으나, 좋은 방법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