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이서수, 『당신의 4분 33초』 본문
※ 이 글은 2020년 8월 동인문학상 독회에 제출된 의견의 일부분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이 글은 바로 앞의 글, 「2020년 8월의 한국문학, 바람 서늘」을 참조하면, 그 의미를 좀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이서수의 『당신의 4분 33초』(은행나무, 2020.07)는 통속적인 세상에서 문화적으로 성장해가는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묘사가 수월하다는 게 큰 장점이다. ‘존 케이지’와 ‘이기동’이라는 두 인물을 지속적으로 대비시키면서 그들의 감정의 추이와 세상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추적한 소설인데,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떤 교훈이나 설명된 인격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그 자체이다. 가령 존 케이지의 아버지는 이렇게 아들에게 말한다.
“얘야, 생각만 해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차라리 뭐라도 만들어보렴.”
그의 아버지는 여러 가지 크기의 나무토막과 쇠붙이, 고무, 깡통, 볼트와 너트, 못과 망치 등이 들어 있는 잡동사니 상자를 들고 와서 그에게 내밀었다.
묘사가 분명한 목표를 겨냥하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 또한 두 인물의 대비에는 오늘날 풍속을 비판하는 기능이 실려 있다. 한국사회의 천민성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것들을 조망하는 주인공의 천부적인 교양성의 내력이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은 실물로서 살아 움직인다기보다는 연민적인 시선으로서만 기능한다는 게 약점이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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