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김엄지의 『 폭죽무덤』 본문
김엄지의 『 폭죽무덤』(현대문학, 2020.02)은 무엇보다도 그 문체가 스며내는 감각적 느낌들만으로도 놀랍다. 이런 문장을 보라: “흰 개가 장미로 100번길을 혼자 걷는 것을 보았다. / 개의 걸음이 가볍고 빨랐다. / 그 흰 개는 은색 목줄을 질질 끌고 갔다. / 쇠줄이 바닥을 긁는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 이 대목은 아주 투명하고도 깔끔한 묘사를 보여준다. ‘장미로’를 걷는 ‘흰 개’, 그 개의 은색 목줄,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흰색으로서의 ‘바람’,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고 장미로를 긁는 소리. 그러나 이 묘사는 단순히 아름다운 게 아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을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인물의 감각적 운동의 생동성이 여실히 나타나 있는데,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주제는 이러한 감각적 삶의 무기력, 허무함에 지친(피곤하다는 형용사로 빈번히 표현되는) 인물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물의 ‘피곤함’은 이미지에 기대어 사는 삶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의 문을 여는데, 그에 의하면 엄마 세대도 이미지에 기대어 있고 자신도 이미지에 기대어 있다 단 엄마는 이미지를 민간신앙으로 발전시키는 데 비해, 자신은 그것의 허망함과 피곤함으로 우울하다.
'울림의 글 > 소설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수경의 『자연사박물관』 (0) | 2020.07.02 |
---|---|
김병운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0) | 2020.06.08 |
신승철의 『아담의 첫 번째 아내』 (0) | 2020.04.05 |
권여선의 『비자나무 숲』 (0) | 2013.04.29 |
박정애의 『덴동에미전』 (0) | 2012.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