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불을 머금은 투명한 물의 세계 -오정희의 『불꽃놀이』 본문

문신공방/문신공방 하나

불을 머금은 투명한 물의 세계 -오정희의 『불꽃놀이』

비평쟁이 괴리 2022. 8. 5. 15:07

거기에 물이 흐르고 그 물 속엔 불꽃이 어려 있다. 거기란 오정희의 󰡔불꽃놀이󰡕(문학과지성사, 1995)를 말한다. 불꽃놀이는 물론 놀이이지 장소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거기라 부른다면, 그곳이 물이 휘도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부딪치며 격앙된 물의 휘돎, 그것이 불꽃놀이가 가리키는 것이다.

오정희의 물의 표면은 인생이 비추이는 투명한 거울이다. 그 거울은 어찌나 투명한지, 그곳에서 인생은 문자 그대로 물 흐르듯 흘러간다. 모든 것은 변함없이 되풀이되었고 새롭게 시작된다. 그러나, 그런데도 이 깊게 상처받은 느낌은 어찌된 일인가? 그 평온의 물 밑엔 상처입은 물, 꽉 막힌 물, 부패하는 물, 아편에 쩔은 물들이 난류(亂流)한다. 그렇게 어지럽게 흐르다가 문득 솟구쳐 오르고 추한 거품을 흘리면서 스러져간다.

그러니까, 그 물은 그냥 투명한 물이 아니다. 그 물은 붉은 투명성의 물, 불을 머금은 물이다. 불꽃놀이는 신명난 놀이가 아니라 치욕과 절망과 파괴의 반복 연습이다. 작가의 붓 끝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일상의 평온 속에 갇힌 재앙들, 인간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 속에 은폐된 악마성에 대한 전율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은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이름 그 자체 안에 있다. 인간답게 살고자 모든 욕망들이 실은 그 짐승을 낳는 것이다.

작가는 어떠한 희망도 암시하지 않는다. “희망은 올 때처럼 갑작스럽게, 속임수처럼 사라졌음을 그가 오래, 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의 피난 중에 태기를 느낀다고 해서 희망이 샘솟을 것인가? 그 아이 또한 참혹한 야만 속을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 모든 희망과 부패의 끈질긴 교섭을 더듬어 반추하는 것만이 작가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작가는 흐린 기억을 더듬어 옛 주인을 찾아오는 도둑고양이같다. 그곳에 옛 집이 있을 것인가? 어느 곳에도 시원은 없다. 그것은 시야 밖으로 사라진 아득한 소실점일 뿐이다.

그러나, 그 꽉 막힌 부재 속에 외침이, 이야기가 있다. 옛 우물 속에 금빛 잉어는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곳에 금빛 잉어가 살았다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가 없으면, 거짓 평온 속을 흐르는 우리는 기껏 그림자 없는 혼백일 뿐이다. 그러니, 작가는 독자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평안과 참혹의 음모에 대하여. 그에 대해 용쓰는 우리의 헛된 망각에 대하여.

󰏔 1995. 10. 15, 중앙일보, 치욕의 불꽃을 머금은 투명한 물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