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두 개의 전쟁 -이선의 「형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본문
이선의 「형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며」는 가족 문제와 전쟁을 특이하게 결합시키고 있는 소설이다. 어머니가 죽자 한 가정이 파산한다. 가난 때문에 모든 가족이 서로서로를 미워한다. 그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둘째 아들이 고생을 떠맡는다. 급기야는 월남전에 참전하고, 그곳에서 고엽제로 인한 병을 얻어 귀국한다. 그리고 그 병이 악화되어 죽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두 개의 전쟁을 병치시키고 있다. 하나는 가족들 간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전쟁이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이 두 전쟁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다. 그는 어느 전쟁이든 똑같은 악덕에 뒷받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 병치를 사용한다. 그 똑같은 악덕은 위선이다. 형이 벌어올 돈에 갈증난 동생은 전장의 형에게 “나라를 위해 머나먼 타국땅까지 싸우러 가신 형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형은 우리 집안의 기둥이에요”라고 편지쓰고, 그 형에게 몹쓸 병을 심어 준 고엽제는 “성능 좋은 모기약”으로 선전된다. 그 위선의 끝은 자멸이라고 작가는 선언적인 어조로 말한다. 자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 속에 둔 상처가 있다면, 마음 속에 두지 [말고] 차라리 느끼는 고통보다 몇 배 더 부풀려 엄살을 부려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가슴속에 감추어진 상처를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위선을 벗어나는 길은 서로의 상처를 교환하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자신의 숨은 욕망을 솔직히 까발길 때에만 타인의 감추어진 욕망을 열 수 있고 그와 동등한 자격으로 만날 수 있다. 대화 형식은 그 상처드러내기-욕망열기의 언어적 실현이다. 두 개의 전쟁에 의해 희생된 아들의 아들과 그의 막내 외삼촌 사이의 대화. 그러니까, 그 대화는 상처가 토로되는 장소이자 동시에 고해의 자리이며, 또한 이해의 자리이다.
1993, 『’93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현대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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