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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과 더불어 사는 네 가지 방식 -김병언의 『개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슬픈 사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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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과 더불어 사는 네 가지 방식 -김병언의 『개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슬픈 사건』

비평쟁이 괴리 2022. 11. 6. 08:30

누구나 괴로움을 떠안고 산다. 망나니 동료거나 빨갱이 아버지거나 아니면 죽은 자식에 대한 기억이거나 부끄러운 과거의 행동이거나. 그것은 굳은 흉터가 아니다. 그것은 매일 가슴속에서 자라난다. 그것은 공포를, 절망을, 부끄러움을, 원한을 하염없이 키운다. 그것은 도려내면 오히려 온 몸에 퍼지는 암세포와도 같다. 괴로움은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서(同棲)할 수밖에 없는 적이다.

김병언의 개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슬픈 사건(문학과지성사, 1995)에 의하면, 그 암종과 함께 사는 네 가지 방식이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세 번의 부인과 한 번의 수락이 있다. 우리는 괴로움의 베드로이다.

그 하나는 경찰의 방식이다. 괴로움을 가두고 구박하고 타기하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부재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기나 한가? 그것은 결국 타인에게 괴로움을 떠맡기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그 스스로 타자의 괴로움의 원천이 된다.

그 둘은 사업가의 방식이다. 괴로움이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써먹을 수 있지는 않을까? 괴로움에게 항변의 기회를 주자. 그것은 우리의 관용을 증거할 것이다. 이 괴로움을 과시하기로 하자. 누구든 이렇게 괴로움을 온 몸으로 떠안고 사는 나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괴로움은 그렇게 나의 행복의 자원이 된다.

그 셋은 봉급생활자의 방식이다. 그는 괴로움에 대해 큰소리치지도 입다물게 하지도 못한다. 경찰과 부장에게 떠밀려 그냥 그것을 껴안고 산다. 괴로움은 그의 평생의 속병이 된다. 어느 날 휴거가 일어나 그 짐을 덜게 될 꿈을 구걸하면서. 문득 괴로움이 온 몸에 퍼져 죽음에 이르게 될 악몽에 시달리면서. 괴로움은 그를 환상과 재앙으로 이끄는 통로이다.

아니다, 아니다. 괴로움을 그렇게 가둬서도 팔아서도 앓아서도 안 된다. 그 잔인하고 퇴폐스럽고 굴욕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괴로움에 대한 이 세 번의 부인을 부인하기로 하자. 그 마음이 있을 수 있다면, 괴로움을 온 몸으로 수락하는 길이 또 하나 남는다. 스스로 괴로움의 내력 그 자체가 되는 것. 원수를 죽이기 위해 날마다 간 칼이 마침내 닳아져서 아무도 해칠 수 없게 되는 것. 그렇게 괴로움과 함께 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있는 한 괴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미화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평생의 생각거리가 된다. 그 원인과 치유를 향해 열린 창문이 된다.

󰏔 1995. 12. 10, 중앙일보, 괴로움과 함께 사는 네 가지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