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시집 읽기 (26)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황혜경의 『느낌氏가 오고 있다』(문학과지성사, 2013)가 어제 문학과지성사로부터 택배로 왔다. 나는 그 시집에 해설을 썼는데, 해설 제목은 「연필 무덤 아래, 꽃과 신발의 적대적 협동 세계를, 생각하며 살기」이다. 해설을 쓴 사람의 권리로 두권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잊었는지 시인의 사인이 들어간 한 권밖에 오질 않았다. (2013.04.14) * 추기: 나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지면에 발표한 글을 이곳에 중복해 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이 블로그를 꾸려가는 명분이라는 게, 문학과 세계에 대한 나의 견해를 공중에 게시하는 것이라면, 내가 다른 곳에서 제출한 견해들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는 게 또한 나의 도리일 것이다.
지극히 검박한 표지가 암시하듯, 정현옥의 시집, 『띠알로 띠알로』(도서출판 가림토, 2012)는 소박한 시들의 모음이다. 그러나 가만히 읽어 보면 시인의 섬세한 눈길과 겸손한 태도가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호응의 물결을 일으킨다. 가령, 귀까지 멀었는데 파도 소리는 노인의 꼬부라진 잠까지 따라와 가슴을 쥐어박는다 (「홀트 서핑」부분) 같은 시구는 소수자의 내면에 갇힌 삶에 대한 열정과 그 절실함과 안타까움을 여실히 전달하고 있으며, 처마 끝 우설(牛舌)이 피운 연꽃을 보다 입안에 혀만 말아 넣었다 (「개심사」 부분) 같은 시구는 대상에 대한 시인의 허심탄회한 수용성과 겸손한 자세, 그리고 섬세한 언어감각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우설’은 절 건물의 ‘쇠서받침’을 뜻한다.) 사람들이 떠난 강제철거지를 ..
올해 출간된 시집 중, 심보선의 『눈 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1), 이수명의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문학과지성사, 2011), 이준규의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문학과지성사, 2011), 『삼척』(문예중앙, 2011)은 그 시적 외양들이 판이한 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집합 안으로 묶을 수 있고, 그 집합은 한국문학에 새로운 어법을 제공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어법을 잠정적으로 나는 ‘행언(行言)’의 어법이라고 명명하였는데, 그것은 언어가 그 자체 행동으로서 나타난다는 뜻이며, 따라서 언어가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오로지 동사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나는 이런 생각을 아주 조금만 늘려서(다시 말해 모든 시들을 두루 살피는 일까지는 못한 채로), 한 편의 글을 썼는데, 계간..
외국의 시를 읽고 공감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과 달리 시는 오로지 언어의 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번역은 매개가 아니라 장애가 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클로드 무샤르 교수가 “번역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했을 때 내 머리를 때리며 지나간 번개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번역의 불가피성의 문제를 넘어서, ‘내재성’이라고 해야 할 그런 성질이다. 우리는 매번 서로의 코드를 확인하고 상대방을 번역하면서 교섭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오류를 범하면서, 계속 그 오류를 고치려고 애쓰면서. 저 옛날 바슐라르가 ‘인식론적 장애물’이라고 부른 것은 이제는 번역 장치의 호환성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바슐라르는 저 ..
정한아의 시들 밑바닥에 슬픔의 감정이 가득 고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장문의 「시인의 말」에는 ‘우산’ 대신 Enough to say it’s far라는 제목의 시집을 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시집은 박재삼의 영역시집, 『아득하면 되리라』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독자는 정한아가 박재삼과 정서적 친연성이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 그의 시를 들춘 순간 근원을 알기 어려운 슬픔을 얼핏 엿본 느낌을 되짚게 된다. 근원을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인적인’ 근원을 알 수 없다는 말이고, 담화적 근원, 즉 독자와 함께 이루는 사회적 세계에서 슬픔이 미만하게 된 원인은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상황은 붕괴되었는데 인간은 멀쩡히 살아 있는 사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