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소설읽기 (103)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두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이주혜의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창비, 2023.11)은 현재 가족의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정신적 질환을 ‘일기 쓰기’를 통해서 치유하는 한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분노의 감정이 밤송이처럼 껍질을 뚫고 솟아나는 현재의 사건은 금세 뒤로 숨고, ‘일기’의 형식으로 인물의 지난 세월을 차분히 회상하는 과정이 매우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그 솔직함으로 이 소설은 198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의 사회적 환경과 정신적 정향을 추적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 충분히 쓰일만하다. 이 소설은 문학의 기능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제기한다. “..
※ 아래 글은 제55회 동인문학상(2024)의 첫 번째 독회의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의 홈페이지에서 1차 독회의 결과에 대한 이영관 기자의 요약기사( 유머는 있으나 웃을 수가 없고 순간은 사라졌으나 잔상이 남네 (chosun.com))와 심사위원 전체 의견 전문( [동인문학상] 1월 독회, 본심 후보작 심사평 전문 (chosun.com)) 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를로르François Lelord는 『엑토르는 새 인생을 살려고 한다』(Odile Jacob, 2014)라는 소설에서 정신과 의사인 주인공의 입을 빌려, 세상 사람들을 두 종류로 분류하고 있는데, ‘감염병’으로 존재하는 자와 ‘감염되는 자’가 그 둘이다. ..
※ 아래 글은 제55회 동인문학상(2024)의 첫 번째 독회의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의 홈페이지에서 1차 독회의 결과에 대한 이영관 기자의 요약기사( 유머는 있으나 웃을 수가 없고 순간은 사라졌으나 잔상이 남네 (chosun.com))와 심사위원 전체 의견 전문( [동인문학상] 1월 독회, 본심 후보작 심사평 전문 (chosun.com)) 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아주 오래전 청소년을 위한 철학동화로 베스트셀러가 된 『소피의 세계』에서 저자 요슈타인 가아더는 ‘대위법’이라는 장에 “두 가지 이상의 멜로디가 동시에 울려 퍼진다”라고 쓴 적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대위법의 핵심을 짚었다는 점에서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점은 대위법에서는 둘 이..
※ 아래 글은 제54회 동인문학상 제 8회 독회에 대한 독후감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김은의 『사랑의 여름』(자음과 모음, 2023.07)은 교과서적인 단편들을 모아 놓고 있다. 간명한 갈등 구조를 통해 사건에 특색을 부여하면서 상징적 제재들의 적절한 활용에 의해 리얼리티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사건의 마디들이 차분한 논리적 단계를 밟고 있고, 배정된 시간의 비율이 고른 점으로, 이는 작가가 매우 오랫동안 소설쓰기를 연마해 왔음을 짐작케 한다. 1990년대 이래 한국소설이 갈수록 플롯이 느슨하게 풀려 온 경향을 안타깝게 여겨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유붕이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여 “불역낙호(不亦樂乎)”인 심정을 더해 한국소설에 ..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제 8회 독회의 결과물로서의 독후감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구병모의 『있을 법한 모든 것』(문학동네, 2023.07)은 코믹인가? 한숨인가? 실상 여기엔 진부하고 데데한 현실만이 있다. 미래 세계인데 인간이 상상하던 환상의 미래도 음울한 디스토피아도 아니라 그냥 재미없는 현재의 연장선상이다. 게다가 그 연장은 한이 없다. 현재의 진부함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게 작가의 메시지다. 문제는 이 낡음에 대한 화자의 반응이 고도로 민감하다는 점. 구병모적 글쓰기의 특징은 사물들에 대한 모든 순간 모든 지점에서의 서걱거리는 느낌이다. 화자는 그 옆에 놓인 것들, 그가 만나는 것들, 스쳐 지나는 것들 모두를 지나치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