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소설읽기 (103)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여덟 번 째 독회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과학은 ‘사이파이Syfy’(과학소설)에게 있어서 필요조건이라기보다는 충분조건이라고 여겨질 때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의 과학소설들은 과학적 지식과 환상적 요소들을 뒤섞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 판타지와 과학소설의 정향은 기본적으로 상극이다. 판타지가 잃어버린 왕국에 대한 향수에 기초해 있다면 과학소설은 미지에 대한 탐구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김보영의 소설, 『종의 기원담』(아작, 2023.06)은 정통 사이파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인류세’를 넘어 먼 미래의 로봇이, 로봇의 시각으로, 로봇의 방식으로, 로봇의 지..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여덟 번 째 독회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김솔은 정보를 가득 담은 광주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작가이다. 간단히 말해 잡학의 달인이다. 이 점은 소설가의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점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정보 현시에 대한 충동이 자칫 구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소설의 요소가 아닐 수 없다)에 대한 배려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작 소설집, 『말하지 않는 책』(문학동네, 2023.06)은 자신의 생래적 충동을 잘 제어함으로써 단단한 단편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어서, 반가운 약진이라 할만하다. 물론 갈증 가득한 잡식에 의지하여 있을 법하지 않은 엉뚱한 이야기들을 넝쿨로..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여덟번 째 독회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이번에 후보작으로 선정된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을 두고 이를 신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세 편의 단편들을 연작으로 묶어 놓은 이 책에서 두 편은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이 보태짐으로써 이 소설이 장편의 모습을 갖추며 완성되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동의를 모았다. 그 이전까지 작가가 발표한 「종의 기원」들은 연속된 단편들일 뿐이었다면, 『종의기원담』은 연작 장편인 것이다. 덧붙여 후보작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신진 류시은의 『나의 최애에게』(은행나무, 2023.06)가 주목을 끌었음을 밝힌다..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제 7회 독회의 결과로서 작성된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인생연구』(창비, 2023.05)를 읽으면서 정지돈이 제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의 소설의 무대에는 정상적인 독자가 보기에는 어이없는 모습들과 행동들이 빈번히 출현한다.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하는데, 그 근거가 불투명했다. 이번 소설집에 와서 소설적 요소들이 정돈되면서 단서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단서를 알아차리면 그의 소설쓰기가 매우 깊은 고뇌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어서 알 수가 있다. 가령, “진양의 졸업영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얘가 드디어 미쳤구나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진양은..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제 7회 독회의 결과로 작성된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은행나무, 2023.05)의 ‘책 날개’에 난 작가 소개에 의하면 이서수는 ‘월급 사실주의 동인’이라고 적혀 있다. 간단히 해석하면 ‘생계형 작가’라는 뜻이 되겠다. 실제로 이 소설집의 주된 사건들은 빈민의 각박한 삶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한국문학의 역사는 길다. 최서해로부터 조세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작가들에 의해 숱한 작품들이 씌어졌다. 이서수의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건 무엇일까? 오늘날의 소설 네트워크(소셜 네크워크가 아니다)에서 보자면, 그의 소설이 사회적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