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소설읽기 (103)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4회 여섯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건달 사상을 찾는 일의 의미 구자명의 『건달바 지대평』(나무와 숲, 2023.03)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첫째, 거의 무명에 가까운 작가의 등장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문학 출판계의 전략적인 상업 유통망에 의해서 배제된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면, 그것은 그냥 주목받은 게 아니다. 저 문제의 유통망을 찢으며 튀어나왔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지배적 유통망이 ‘사생활에 대한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접근’(이는 대중 미디어에서 연예인들이 나와서 잡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으로 한국 문학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 설치된 언어의 철조망에..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4회 여섯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소설적 요소들이 너무 많은 소설 이주란의 『별일은 없고요?』(한겨레출판, 2023.04)는 미세한 어긋남에 대한 소설들을 모두고 있다. 이 어긋남은 물론 사람들 사이의 어긋남이고 사람들 사이에 그런 현상이 있다는 것은 각자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얼마간 ‘맞지’ 않는다, 즉, ‘편하지 않다’는 뜻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어긋남은 분열과 불화를 야기한다. 첫 소설에서 주인공이 직장을 그만두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쳤더라면 이 소설집은 그닥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어긋남은 절망적 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으나, ..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제 5회 독회의 결과물로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먼저 발표되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정영선의 『아무 것도 아닌 빛』(도서출판 강_)은 세목들의 핍진한 묘사로 돋보인다. 빨치산 활동으로 인해 장기수로 복역하고 상시적 감시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 히로시마 피폭에서 생존한 인물, 일본인과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박탈자’로 살아온 사람 등의 사연들을, 번갈아 소개하고 또한 교차적으로 엮으면서, 전달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런데, 인물들이 겪은 사건들의 적확한 복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 인물들이 갖는 기억과 감정들과 추리들이 끊임없이 대조되고 복원되고 수정되어 가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주밀하게 좇고..
※ 이 글은 동인문학상 제 54회, 제 5회 독회 결과로서 제출된 글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먼저 발표되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손보미는 ‘언어 위악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특이한 문체적 표현들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무난하고 자연스런 대화의 흐름 속에 문득 특정한 패턴을 형성하는 규격화된 언어들이 튀어나와, 전반적인 말의 흐름과 긴장을 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병든 닭 같아, 너.” “안녕, 나는 영예은이라고 해. 앞으로 잘 도와줄게.” 이런 말은 일상 대화에서 흔히 쓰는 어법이 아니다. 이는 특정한 대화 상황에서 한 당사자의 말들이 내포하고 있는 심경을 의식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에 의해서 구성된 말이다. 이때 발화자의 ‘심경’은 폭력적이며, 발화자의..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독회를 통해 제출된 독회 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오랜만에 보는 천운영 소설(『반에 반의 반』, 문학동네, 2023.02)의 새로운 모습은 과거의 소설과 유사한 면과 달라진 면이 두드러지게 구별된다는 점이다. 제재로 선택된 어떤 인생의 유별난 집중성은 과거의 소설적 특성을 유지하지만, 그 인생과 바깥 시선 사이의 근본적인 소통 불가능성이라는 주제는 새로운 것이다. 이 변화는 작가의 체험과 연관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텍스트 효과는 그와 무관한 곳에서 발생한다. 첫 작품인 「우리는 우리의 편이 되어」에서는 방금 언급한 천운영 소설의 두 가지 기본 특성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관계 양상을 증언하는 데에 효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