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 (219)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남풍을 위한 노래 오 남풍이여, 어서 와 눈을 마셔줘오. 우리는 얼음과 바람으로 배가 불러요. 다감한 민들레가 흙에서 뽑아내요. 황금빛으로 아롱이는 아주 조그만 햇살 하나를. 오 남풍이여, 어서 와 눈을 마셔줘오. 우리는 추위와 비로 배가 불러요. 데이지 한 송이 있어 흙에서 뽑아내요. 피를 촐촐 흘리는 아주 조그만 햇살 하나를 오 남풍이여, ‘사랑’ 신이 그대를 보호해 주시길 기원해요. 우리는 모두 배고프고 행복에 굶주렸다오. 새싹 눈은 모두가 겁먹은 채로 엿보고 있다오. 그대가 쪽빛의 숨을 들이켜 눈을 마시기를 CHANT POUR LE VENT DU SUD O brise du Sud, viens boire la neige, nous sommes repus de gel et de vent, un dou..
성모께 드리는 기도 지고한 사랑이여, 제 말을 들어주소서. 제가 당신을 어디에서 맞이했는지 알지 못하고 그대의 처소가 어느 태양인지 알지 못하고 어느 옛날에 당신의 시계로 어느 때에 제가 당신을 사랑하였는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요. 제 기억을 꿰뚫고 계신 드높은 사랑이여 . 제 삶을 만들었던 화로 없는 불길이여, 어느 운명으로 저의 생애를 가로지르시고 어느 꿈결에 당신의 영광을 마주 보았는지 오 저의 안식처여… 언젠가 제가 길을 잃어버리고 무한 심연 속에서 갈라지는 날이 올지라도 무한히 제가 부숴져 저를 입혀준 오늘이 저를 배반하는 날이 올지라도 우주에 수천의 조각으로 몸이 찢겨 나가도 수많은 순간들에도 다시 합치지 못한다 해도 하늘에 뿌려진 한 줌 재에서 잡티 털어낸 허무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어느 낯선 ..
이제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리 많은 사람들이 이제 빛이 파닥이는 걸 보지 못하리. 봄날 아침의 미묘한 광채도. 다정한 햇살이 앵초 꽃잎을 살짝 열어보지만, 헛되리. 나는 스무 살도 안 돼 죽은 젊은 영혼들을 생각하네. 운명이 겨우 삶의 맛을 본 저들을 어둠 속에 눕히네. 늙은이들과 여인들은 바라보리. 저 곱은 손들 안에서 사그러드는 불꽃을. 신성한 불길들이 꺼져가는 것도. 하지만 이들은 다시 살아나누나. 그러나 저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이 신비를 알아보지 못하리. 저 옛날에 기쁜 날에 그들을 사로잡았던 그것을. 태어나는 새싹들에 빛 줄기 하나만 놓일 때. 어린 나무에 꽃이 필 때거나, 푸른 하늘이 펼쳐질 때의 그 홀림을. 저들은 더 이상 감미로운 열락을 느끼지 못하리. 저 옛날 오직 아름다움만이 숨결을 ..
노래 박쥐의 비상, 음흉히, 불안한 눈길로, 기괴하게 헤어진 날개를 파닥거리며 오고, 가고, 횡행한다. 그대 찰나라도 느끼지 않았니 ? 허망한 고통에 푹 빠진 내 영혼이 미친듯이 달려드는 것을, 그대 아득한 입술을 향해. 뚜렷이 보이네 틈만 나면 너는 악덕을 범하는 기묘한 솜씨를 발휘하나니, 그리고 너는 욕망의 불을 지펴놓고는 뒤통수 치는 데는 귀신 같아, 재빨리도 몸을 빼는구나. 이불 냄새와 네 양장에 뿌린 향수가 뒤섞여 너의 매혹적인 금발은 엿같이 엉겨 칙칙해진단다. 너는 거짓과 꾸밈만을 좋아해. 달콤한 말들과 교태로 간지럼을 떠는구나. 너는 키스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그저 스치기만 하지. 네 눈은 파리하게 빛나는 겨울별들 같아. 장례행렬이 우중충히 네 발자국을 따라다닌다네. 네 몸짓은 그림자..
깊은 삶 한 그루 인간의 나무로서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 짙푸른 녹음처럼 저의 욕망을 펼치는 것, 그리고 고적한 밤에 그리고 천둥칠 때 만물의 수액이 제 손 안에서 흐르는 걸 느끼는 것 ! 사는 것, 얼굴 위로 햇살들을 받는 것, 이슬비와 눈물들에서 불붙은 소금을 마시는 것, 그리고 대기 속에 인간의 수증기를 뿜어내는 기쁨과 고통을 열렬히 맛보는 것 ! 생생한 마음으로 공기와 불과 피를 느끼는 것, 대지 위의 바람처럼 맴돌이 춤을 추는 것, — 현실에서 일어서서 신비에 몸 기울이는 것. 떠오르는 아침과 저무는 어스름이 되는 것. 버찌 색을 품은 자줏빛 저녁처럼 진홍빛 심장에 불길과 물이 흐르게 하는 것. 그리고 해맑은 아침해가 언덕에 걸리듯 주저앉은 세상 가두리에서 꿈꾸는 영혼을 가지는 것. 페르시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