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불가해한 몸의 흐름을 타고 마음의 돛단배는 종말의 절벽 쪽으로 끌려가는데...위수정의 『우리에게 없는 밤』 본문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아홉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위수정의 『우리에게 없는 밤』(문학과지성사, 2004.07)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현실의 흐름에 느슨하게 끌려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감정적인 흥분도 보이고 지적인 호기심도 읽히고, 스스로 이행하는 의지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들은 격렬하지 않고 매우 조용해서 독자가 의식하고 읽을 때에만 감지할 수 있다. 또한 각 인물들의 행동에는 저마다의 행렬이 있다. 그들 사이에는 사연의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현대인들의 총체적 고립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삶 밑바닥을 관류하는 공통의 느낌이 있다. 지금 몰락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몰락의 근원에는 제각각 다른 양태로 나타나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충동은 아주 은밀히 작동해 당사자도 결코 의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몸으로만 표현된다는 것. 그러니 독자가 직전에 ‘현실의 흐림’이라고 파악했던 것은 실상 인물들의 비자각적 몸의 움직임이라는 것.
그리고 곰곰이 들여다 보면, 이 불가해한 행동들의 밑바닥에 유사한 강박관념을 짐작케 하는 단서들이 보인다. 그것은 무언가 뺏길 것 같은 초조함, 혹은 숨죽이고 사는 내면에서 폭발할 것 같은 숨은 감정이 주는 불안, 또는 저마다의 고립된 삶이 혼돈으로 치닫고 말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 침묵의 몸짓들은 SNS를 필두로 한 오늘날의 모든 미디어가 뜨거운 홍염을 일으키면서 작렬(炸裂)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요란법석에 짓눌린 채로 허덕거리는 작은 개인들의 신음소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진단하기에는 그들의 몸의 충동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그것들은 자신의 완전성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완전성에 대한 강박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파악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신음이든 강박이든 이 저마다 다른 양태들은, 저마다 고립되어 있다는 공통된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그렇게 읽게끔 이 작품들에서 쓰인 문장들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일상적 관용어법들을 상당수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이는 자기애 사회가 자기 중력을 못이긴 막바지에서 ‘빅 크런치’를 일으키기 직전인 상황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아수라 같은 고함의 용광로 안에 갇힌 채 제각각의 내면으로 도피한 작은 기포들의 무참한 소산인가? 아니면 종말의 다양한 원인들을 망라하면서 생의 공허감을 미세한 감정의 분말들로 뿌려대는 것인가? 두고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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