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 (219)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전락 나, 가지 무성한 마로니에 바라보지만 꿈이었네. 싹눈들은 파였고 잎들은 떨어졌네. 오 울금빛 나무들의 치명적 전락이여 ! 뇌성치는 가을 재난 속에 휩쓸리도다. 결코 11월은 다시 오지 않을 듯하이. 반면 마로니에여 ! 너희의 팔에 꽃이 피는 날 더운 바람이 네 꽃들을 내 방에까지 던지리라. 그날은 이미 암시처럼 이미 있을 것이라. 패랭이꽃 맹렬한 패랭이꽃 내음 우리 조심스런 영혼을 옛날의 여름들로 데려가려 헛되어 애쓰고 있네. 이 회감의 물결을 타고 패랭이, 패래이 꽃들이여, 우리를 데려다 다오. 우리 유년의 푸른 정원으로 그대들이 보드라운 씨낭 속에 머물러 있던 때 ! CHUTES Je regarde en rêvant les marronniers rameux: Les bourgeons ont cr..
옛 마을 옛 마을이여, 네가 키운 사과들은 어떻게 되었니? 나무는 잔디 비탈에서 쓰러지고 금빛 사과주가 사람들의 입술에서 거품을 내는구나 그리고 향기가 계절을 넘어가네. 옛 마을이여, 네가 품은 영혼들은 어떻게 되었니? 저녁이 집 문턱에서 숨을 내쉬면 은실이 여인들의 손가락에 휘감기네. 그리곤 레이스가 지평선을 수놓지. 옛마을이여, 네 시각들은 어떻게 되었니? 네 추억은 너의 처소에 잠들어 있네. 시간은 산비둘기 곁에서 날아가는데, 네 숲 속의 산들바람은 모든 걸 기억하지. 그러니 지상낙원의 향기를 모든 사과나무 근처에서 지금도 맡을 수 있단다. 작은 새들 너희들 뭐라고 말하는 거니 ? 작은 묘지새들아, 어떤 새들 못지 않게 노래 잘 하는 너희는 그래 노래 부르는 거니 ? 하지만 소리 좀 죽여라. 여기는..
향기에 미쳤네 나는 죽도록 향기를 맛보나니 아프로디테의 미약 과 같아라. 내 몸을 간지르는 심신 탈취의 향기들, 욕망의 하수구를 흘러 퍼지네. 나 그 신비를 만끽하네. 이 아찔한 흡입으로부터. 이탄(泥炭)질의 목초지를 선회하는 고독한 목신(木神)의 몸 냄새. 오 나를 탈진시키는 관능이여, 집요한 손아귀를 가진 내음이여, 겨울이면 갈라지는 밑둥이여, 살이 끈적거리는 버섯들이여, 나를 휘감고 도는 신처럼 그대들의 방황은 내 혼을 빼앗는구나, 내게 신의 비밀을 알려주는 주술사의 노래보다 더욱 신비롭게 꽃다발 나, 비에 젖어 축축한 자작나무를 닮았어요. 지저분한 안개로 시커멓게 더럽혀진 물가의 헐벗은 물푸레나무를. 내 영혼은 오래된 무덤의 푸르죽죽한 색깔이에요. 나, 뗏목에 매달린 난파자랍니다. 파도가 길쭉한 ..
미풍과 태풍 오 ! 나는 그늘 짙은 숲의 저녁을 사랑하노니. 숲의 야생의 위엄과 그 숨겨놓은 게 많은 명확함을. 소심하고 뿌연, 창백한 빛 하나가 저 검은 전나무들에 하얗게 쬐이면, 그 전나무들은 찌푸린 이마를 들어 하늘을 향해 되쏘면서 빛이 갈 길을 가리키다가 자신의 궁창을 쓰다듬는 제피로스에 놀라네. 어느 영혼의 비상인 듯, 무언가를 호소하는 속삭임이 아름답게, 알 수 없이 달아나는 듯한 느낌으로 올라오네. 귀는 기울여 이 중얼거림을 해독하려고 하지만 마음은 홀로 자연의 목소리를 알아 들으니, 그건 자연이 이 짙은 어둔 밤, 신비스런 어조로, 죽은 자들에게 나타나,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 또는 갑자기 침묵을 찢으며, 대지의 끔찍한 울부짖음이 솟아오르는 것이기도 해. 그리고 보레아스 [1]의 아들이..
피로 말로 꺼낼 수 없는 불편한 마음으로 이 긴 날들을 보내니, 죽음의 무거운 잠에 들고 싶어라. 이 불안의 날들에, 산다는 것이 마음과 몸 위를 짓누르는구나. 이럴 땐 달콤한 생각을 찾지만 헛된 짓. 웃음 터뜨리는 영상도, 비옥한 추억도. 마음은 한 순간 일어나 투쟁하나, 곧 찌그러져 추락하누나 저의 깊은 권태 아래로 이럴 땐 매혹적인 어떤 것도, 사랑했던 어떤 것도, 각성된 눈에는 그저 눈속임의 광채일 뿐, 그리고 꿈꾸었던 행복이, 설혹 올지라도 우리의 무감각을 이기지 못하리. 소네트 언제나 솔직함을 신주 모시듯 지켜왔는데 모든 고결하고 순수한 감정을 믿고, 고통을 감내하지만 거지가 적선을 구걸하듯, 소망 하나를 갈망하며 이따금 그걸 받으면, 그걸로 오래도록 기운내노니. 그리곤 이 경박한 세상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