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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내가 문화관광부의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사업의 하나로 ‘언어의 새벽 – 하이퍼텍스트와 문학’을 열었던 게 20년전의 일이다. 김수영의 「풀」에 나오는 시구 ‘풀이 눕는다’를 씨앗글로 삼아, 다른 시인들 그리고 일반 네티즌들이 이어 쓰도록 한 확산형 상호텍스트 넥트웍을 시도한 것이었는데, 이런 시도는 세계 최초의, 집단 창작형 하이퍼텍스트 실험이었을 것이다(그 이전에 ‘문장 이어쓰기’의 작업은 많이 있었지만, 확산형은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었고 요즘도 가끔 그걸 다루는 논문들이 있는 듯한데, 나는 이 작업을 재개하고 싶어서 옛날 자료를 뒤졌다가 몽땅 잃어버린 걸 알고는 지독히 실망한 게 벌써 10여년 전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기본 자료들을 찾았다. 프로그래밍 소스, 당시에 입수한..
강희근 선생이 새 시집, 『리디아에게로 가는 길』(현대시학사, 2020.04)을 보내주셨길래 읽다가 터키 이스탄불에 ‘피에르 로티 언덕’이 있다는 걸 알았다(시인은 시, 「주말」에서 ‘삐에르 로띠’라고 된소리로 쓰셨다. 시를 인용할 때는 시인을 따라야 햐겠지만, 공식적인 지명으로는 교육부 표기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피에르 로티Pierre Loti는 프랑스 해군장교였던 루이-마리-쥘리엥 비오Louis-Marie-Julien Viaud(1850-1924)의 필명이다. 그는 ‘피에르 로티’라는 이름으로 자전적인 소설을 썼는데, 그 첫 소설이 터키 궁전의 여인과 자신의 사랑을 다른 『아지야데Aziyadé』이다. ‘아티제Hatidjé’라는 여인과의 진짜 사랑에 바탕을 둔 그 허구에서 두 남녀는 이별과 재회의 ..
최근 구한 한국문학작품들 중 상당수는 예전에 나온 책들의 재출간본들이다. 당대에 주목받았거나 판매가 잘 되었던 것들을 포장을 개비(改備)해서 내놓는 것들이다. 그런 책들의 상당수가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시방은 생존 모드인 모양이다. 20세기 말에 불어닥친 세계화 바람은 2013년 전후에서 한국의 문학독서시장을 완벽하게 환골탈태시켰다. 한국문학/세계문학이라는 한국작가들에게 꽤 쏠쏠했던 분할 구도가 폐기되고 단일한 세계 시장 안에서 한국문학과 일본문학과 유럽문학과 미국문학이, 더 나아가 문학과 사회학과 인류학과 문화학과 문화로 포장된 소비상품들이 단일 종류의 매대 위에 놓여 경쟁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한국문학의 무한정한 패주이다. 본격문학은 유럽문학에 밀리고 대중문학은 일본문학에 뺨 맞..
한강의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수상이 전해지자 한국의 모든 미디어들은 앞 다투어 기사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지금 인터넷에 들어가면 거의 엇비슷한 내용의 무수한 이야기가 떠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사건 뒤에 숨어 있는 한국문학의 지속가능한 생존의 필요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소식은 한국문학에 관해 세 가지 차원에서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안으로 진입하는 각별한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순수한 미학적 판단을 통해서 한국문학이 세계 독자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셋째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방식’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향유..
‘전해라’가 화제다. 가수 이애란이 부른 「백세 인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사가 유행의 도화선이 된 듯하다. 내용은 단순하다.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소망의 형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저, 1년만 더 살고 싶어요!” 이런 애걸은 통하지 않는 시대다. 노래는 거꾸로 나갔다. 죽지 않는 걸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그래서 저승사자가 오면 죽을 생각이 없다고 염라대왕에게 전해라, 라고 대거리한다. 이 말본새가 멋있었나 보다. 들은 사람들은 곧바로 흉내 내서 저마다의 문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인터넷에 들어가면 별의별 ‘전해라’들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왁자지껄 흘러가고 있다. “못 간다고 전해라”, “어디어디 주가는 아직 싸다고 전해라”, “자꾸 그러면 한 대 맞는다고 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