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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독회를 마치며. 한국소설의 사활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

비평쟁이 괴리 2021. 9. 17. 08:20

아래 글은 제52회 동인문학상 제 9차 독회에 제출된 심사의견의 수정본이다. 초고본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동인문학상 대상작 검토 주기는 전해 8월부터 당년 7월까지이다. 2021년 동인문학상 독회는 올해 7월 출간작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으로 끝난다. 마감을 하면서 오랫동안 망설였던 얘기를 하고자 한다.

한국문학은 시방 근본적인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지난 910일자 조선일보에서 이기문 기자가 쓴 그 많던 문학 밀리언셀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근래 10여년 간에 진행된 한국소설 판매량의 급감은 독자들이 한국문학에서 전면 철수를 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이 위기의 원인들과 상황은 단일한 게 아니라 복합적인데 오늘은 한 가지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소설은 점점 더 특정한 연령대로 축소되어서 팔리고 읽히고 있다. 또한 공공 미디어의 관심도 같은 방향으로 연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출판사들에게도 체온계처럼 그대로 전달되어 그들의 판매전략을 해당 연령대를 중심으로 짜게끔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속된 작가들이 마치 이너서클이 되어서 서로를 응원한다. 문학상 같은 주변 현상들에도 그 여파는 진앙의 강도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원래 소설은 어떤 나이에 쓰든 만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니, 작가와 독자층이 세대 별로 호응하는 양상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지만, 이로부터 발원한 더 심각한 양상들은 소재와 주제들이 거의 엇비슷해지고 전개도 그렇게 되어, 한국문학의 폭을 급속도로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항하면서 한국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시도들은 기척도 없이 깜박였다가 사라지곤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한국사람들이 거의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 속에서, 특정 연령대를 벗어나면 독서는 한국인에게 뭣이 중헌디?’ 질문에 대한 부정의 집합에 배당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한국소설은 가장 중하지 않은부류로 취급되어 그 집합 속의 맨 구석 속으로 처박힌다.

그렇다면 그나마 책을 읽는 연령대는 왜 책을 읽나? 그 집단이 책읽기가 체질화된 집단이라면, 당연히 그들의 독서성향은 세월이 지나도 지속될 것이고, 따라서 연령대의 숫자도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들이 특정한 연령대로 접어들면 그들도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서 어김없이 그 현상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이 연령대가 책을 읽는 까닭은 분명해진다. 그들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어떤 상황 속에 처해 있기 때문이고 그 상황을 벗어나면 더 이상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읽을 게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활에 이득을 가져다 줄 그런 책들 뿐이다. (여기에서 특정 세대 단위는 그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 그 파장은 약 10년 간의 시차범위를 갖는다. 설명하자면, A시점에서 책읽기의 계기가 시작되고 B시점에서 그에 대한 의무나 업무에서 해방되면 그로부터 B+10년까지는 책읽기 습관이 남는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의 경우, 최종적 마감 시점은 40대 초반인 것이 경험적 현상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소설의 위기라는 이 현상의 두 개의 근원은 출판에 대한 비전이 부재한 문학 출판권의 지적 열악성(혹은 상업적 경향)이 장기간 지속되었다는 사정이며(내 판단에 이 지속은 소위 사회적 담론으로서 큰 이야기가 타박된 이후 30 여 년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책읽기를 체질화하는 데 실패한 교육의 문제이다. 그 때문에 평생교육이라는 화두도 등장하고 각종 단체며 기관들과 운동들도 번성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유년 시절부터 책읽기에서 물질적 이득과는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체질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관해서 지금까지의 한국 교육은 아이디어를 내면 낼수록 구호를 만들면 만들수록 점점 더 반대편의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 파국의 결과가 한국소설을 찬투처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독자를 가지고 있는 작가라도 행복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지난 30년 동안 경제적 풍요에 뒷받침되어 화려한 작가 생활을 누렸던 사람들이 지금 맞이하고 있는 운명이 그들에게는 닥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누가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일들이 누적이 되다 보니, 동인문학상도 차츰 명예의 전당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이다. 일단 헌액이 된 다음, 작가들의 작품 생산은 뜸해지거나, 독자들의 주목이 희박해진다. 초창기 동인문학상은 거꾸로였다. 김승옥, 이청준, 최인훈 등등은 동인문학상과 더불어 한국문학사의 별들로 자기를 키웠다. 나는 오늘의 동인문학상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무언가가 바뀌지 않으면 내 바램은 헛되고 헛된 허영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