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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3주기 추모행사

비평쟁이 괴리 2011. 10. 23. 13:15

터키 출장 관계로 뒤늦게 적는다. 망각으로 인한 손실이 크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14,15, 이청준 선생 3주기 추모 행사 차 장흥에 다녀왔다. 첫날의 이청준 3주기 추모 문학심포지엄장흥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는데, 마침 장흥이 문학특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한국문학특구포럼이 이어 진행되어서, 아주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참석한 성대한 잔치가 되었다. 또한 박정환 화백이 빚은 이청준 선생 흉상이 완성되어서 공중에 공개하고 사모님께 전달하는 의식이 곁들여졌다. 심포지엄에서 죽마고우인 민득영 선생이 이청준 선생의 호 미백(未白)’이 탄생한 경위를 들려주었다. 이청준 선생과 민득영 선생 등이 이청준 선생의 어머님을 뵈러 갔을 때, 마침 정신이 돌아오셨던 어머니가, “오메, 내 자석 머리가 이렇게 히어부렸다녀,” 하시니, 이청준 선생이 아직도 이렇게 검구만이라우하며 이미 희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셨던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청준 선생과 동향이면서 자주 어울렸던 김선두 화백이 이청준 선생의 소설을 소재로 한 2003소설화전에서부터 현재 진행 중인 전집 표지그림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소설을 그림으로 옮기게 된 내력과 그 어려움을 설명하였는데, 그 중 선생의 얼굴 소묘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그 동안 품고 있었던 의문을 해갈해 주었다. 그 얼굴 그림에서 이청준 선생은 썩 심술궂은 표정을 띠고 계신데, 바로 김화백이 이 소묘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청준 선생의 특별한 성격의 하나로 선생의 심통을 들었던 것이다. 선생은 늘 점잖고 조용한 분이었으나, 지나친 사건들로 축제하는 세상과 지나친 행동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옴팡진 독설을 뱉어내시곤 하였었다.

다음 날 들른 이청준 문학자리글기둥에 새겨져 있는 그림이 마침 그 문제의 소묘였다. 어제의 설명이 생각나서, 나는 김선두 화백에게,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그랬는데, 김화백은 글기둥에 그 얼굴이 새겨진 데 대한 또 다른 까닭을 들려주어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다름 아니라 문학자리의 이 거대함과 호사함을 선생께서 스스로 못마땅해 하시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글기둥에 썼다는 것이다. 김화백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동안 이 문학자리에 대한 내 불편한 마음을 얼마간 덜게 되었고, 그 불편한 마음을 내내 마음속에 품고 있게 한 내 좁은 소갈머리를 꾸짖어 내쫒는 안목을 얻은 걸 기꺼워하게 되었다.

이청준 기념사업회의 작가에 대한 신심과 흠모의 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또한 그 문학자리를 만든 조각가의 그 순수한 열정에 늘 감복해 하면서도, 내가 그 문학자리에 대해 줄곧 언짢았던 것은, 당신들의 천국에 너무나도 명백히 언표되어 있는 동상을 만들지 말라는 언명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생은 돌아가시기 직전 까지도 후배들과 함께 자리한 사석에서 그 말씀을 자주 하셨던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1970년대가 거둔 한국문학의 최고의 성과라면, 거기에는 단순히 박진한 드라마를 잘 썼다는 것만이 아니라, 미학과 인식과 윤리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눈매와 올바르게 처신하는 자세와 아름답게 표현하는 솜씨가 하나로 일치하기는 실상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당신들의 천국은 그 불가능성에 대한 항구적인 확인이며 동시에 영원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도전의 핵심에 동상 만드는욕망의 터럭만치와도 싸우는 마음의 결단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김선두 화백이 문학자리글기둥에 그 뜻을 새김으로써, ‘문학자리스스로 자신을 경계하는 시선을 옆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선이 거기에 새겨진 얼굴의 주인공의 그것일 뿐 아니라, 그 문학자리를 만든 사람들의 시선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문학자리에 안식하고 계신 이청준 선생은, 선생을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의 총화이기 때문이다. (2011.10.23.)


* 참고로, 이청준 문학자리의 위치를 적어둔다: 다음 주소의 육지 방향 안쪽이다.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1253-2
http://m.google.co.kr/u/m/BrSz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