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09년 '현대시 신인상' 심사평 본문
이영희씨의 시는 시의 도반(道伴)들에게 썩 미묘한 문제를 제기한다. 시가 현실에 대한 비유라는 건 토론을 요하지 않는 일반적 정의 중의 하나인데, 이씨의 시는 그 정의와 대각선의 방향으로 어긋나 있는 것이다. 이씨의 시를 저 정의의 순수한 시각으로 독해하면 시의 풍경은 별로 사실스럽지도 않고 그에 붙는 ‘설명’들도 조급하기만 하다. 그러나 거꾸로 비추어 보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난다. 다시 말해, 시가 현실의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 시의 비유라고 읽는 것이다. 그렇게 읽으면 속이 개에 불과한 거죽의 인간들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서성이는” 모습으로 목줄이 매인 채로 “어둡고 좁은 지하차도를 지나” 넘어졌다 일어서고 밀려갔다 밀려오길 반복하는 치욕과 불안의 실상을 포장하는 가운데, 러브호텔(“모란장”)의 화살표가 유인하는 “창살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광경이 선연히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속내 풍경을 아는 사람이 “한 접시 수육을 먹는다면” 그건 바로 “컴컴한 공포를 물어뜯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상인 개를 강박적으로 삭제하고 싶어하는 히스테리 충동의 표출로서.
이런 시적 방법론은 매우 특이한 전도이다. 이 특이성에 호기심을 느끼기 전에 우리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하리라. 여기에는 현실에 대한 도저한 부정적 시각이 개입해 있다. 그 부정적 시각은 그냥 현실을 무기력하고 참담하고 욕되고 허망한 것으로 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걸 표현하는 데 전도까지 감행할 까닭은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이 시들이 환기하는 건, 현실의 시시각각의 ‘허망해짐’이다. 즉 항상 활기가 넘치는 듯한 표정으로 시시덕대고 까불어대는 현실이 문득 기력이 제로치가 되면서 하얗게 꺼져버리는 것이다. 시는 무기력을 전하는 게 아니라 기력의 붕괴를 가리킨다. 현실은 폐허가 아니라 불현 듯 닥치는 재앙인 것이다. 그 재앙이 일상이니, 그 현실은 사소한 재앙들의 영원한 지속이다. 우리의 삶이 그 영원한 지속 속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런 재앙들의 “그늘인가, 배설인가’’? 이 질문은 무척 곤혹스럽다. 산다는 것의 곤혹스러움과 엄정함 한복판으로 우리를 몰아넣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인의 등장을 기꺼이 축복하고자 한다.
※ 이영희 씨는 그 후 '이수진'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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