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1999년 7월, '출판인회의' 선정 좋은 도서 심사평 본문
<선정소감>
확실히 생명복제의 시대이다. 지난번에 숙제가 너무 많다고 비명을 질렀더니, 실무팀 쪽에서 재빨리 클론 두 분을 붙여주었다. 덕분에 문학 부문을 둘로 나누고 첫 회 선정자들이 각자 신임 위원 하나씩 꿰차고(?) 딴 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신참자의 개성이 어찌나 강한 지, 이번의 선정에는 신임 위원의 의견이 100% 관철되었다. 선정의 안목이 높아졌다면 그것은 출판인회의의 공이고 선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신임위원의 탓이다. 면책한 구닥다리는 그저 양측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이번에 특기할만한 점은 좋은 외국 소설이 많았다는 것. 그러나, 정작 선정된 것은 2종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선정자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집착이 광기의 수준에 다다랐기 때문이 아니라, 번역에서 나름의 문제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일테면 번역이 곤란한 구절들은 과감히 생략하는 대담성을 보이거나 작가 특유의 통사법을 간단히 무시해서 원작의 문체를 전혀 살리지 못한 책들이 있는가 하면, 쓸데없는 각주를 되풀이해 달아놓아서 독자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책도 있었다. 사실 역자의 주석이 원문만큼 중요한 책을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있거니와, 정말 필요한 주석이 무엇인지 번역자들께서 곰곰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물론 번역의 질만이 유일한 선정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이곳의 문화 공간에서 대상도서가 갖는 의의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터이다.
<서평>
『숲으로 된 성벽』
남진우 지음/문학동네
90년대의 한국문학공간의 문학적 환경, 그 환경 속에서 활동한 작가들, 생산된 작품들, 그리고 이 시대의 독자가 교류한 외국문화들에 대해 세심하게 그린 풍경화, 혹은 90년대 문학의 속내 이야기. 왜, ‘속내 이야기’냐 하면, 비평가는 “이 글들이 분석과 평가의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사랑과 열정의 흔적으로 받아들여지길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내밀한 정담 속에서 비평가가 끊임없이 회귀하는 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원형질’이라고 부르는, 기억의 심층 속에 놓인 존재론적 단절의 사건 혹은 심연의 발생이다. 그 단절의 안쪽 면에 남성중심 사회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있고, 바깥면에 모태-출생의 충만한 행복의 사건이 있다. 남진우만의 독특한 비평가적 개성은 그 단절의 사건 자체에 대한 주목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단절의 양쪽 면을 공히 생생한 사실태로서 이해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망각 혹은 은폐의 자리, 따라서 결코 복구될 수 없는 저 단절의 저편을 그는 진짜 생의 영원한 원천이라고 지목하고 그곳에서 길어올린 수액으로 90년대 문학에 강렬한 무늬를 입히는 것이다.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
윤대녕 지음/생각의 나무
‘미지와의 조우’ 혹은 영적인 것과의 비밀한 교접은 윤대녕 소설의 한결같은 주제이다. 그 주제가 현대의 부박한 삶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작가는 다른 세상의 황홀을 그리기보다 영적 교통의 실패에 더욱 주목해 왔다. 이번 창작집은 그 실패의 사건들의 기록이자 동시에 그 근원에 대한 탐색이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바깥으로 벗어나려는 그 운동 자체가 내부로부터 재료와 방법과 에너지를 얻을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현실의 질병에 감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은 풍요와 다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불모성으로 귀착한다. 비구니가 된 여인, 피지 않는 꽃, 동성애 등은 그 불모성의 표지들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서 실패의 결과만을 읽어서는 안된다. 실패의 사건들, 불모성의 증상들이 그 자체로서 풍요에 대한 꿈으로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의 소설들의 실존적 사건들이며, 바로 여기가 그의 문학성이 솟아나는 자리이다. 그러니까 윤대녕의 최근 소설의 변모는 성숙의 관점에서, 즉 그의 전망이 현실 속에서 농익으면서 겪는 시련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도박』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장은수 옮김/세계사
친구에게 1천 굴덴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잠깐의 도박에 끼어든 장교가 도박의 광기에 휘말려 1만1천 굴덴의 빚을 지고 파멸하고마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한 소설.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시나브로 자멸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심리적 추이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솜씨도 압권이려니와 이 과정을 통해서 19세기 말까지 유럽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였던 귀족주의가 부르주아적 가치에 의해 몰락하게되는 사연을 알게끔 해준다는 점에서도 일독을 권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다. 대단원이 클라이맥스라는 것은 장편에 해당하는 이 소설이 단편소설의 박진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야기의 전개상 필연적으로 보이면서도 그 귀결에 대한 주인공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꽤 놀라운 충격을 준다.
『버지니아 울프, 그리운 사람』
버지니아 울프 지음/유진 옮김/하늘 연못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소설들을 모두 모아놓은 책. 울프의 소설은 한국 독자들이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인데, 그것은 한국의 주 독자층이 사무직 여성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는 것은 울프의 소설이 여성취향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녀의 소설이 쉽게 읽힐 수 없는 정신적 깊이를 가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서 시장에서 ‘먹히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특성은 무엇보다도 그 문체에 있다. 그 문체는 여성의 내면을 가장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객관화하고 사물화하는 말끔하고 냉정한 문체이고, 그것이 20세기 초엽 서구 여성들의 사회적 소외와 긴밀하게 대응한다는 점에서 문학적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체가 그저 차가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아침의 이슬들 혹은 저녁 새들의 알 수 없는 장소에서의 지저귐처럼 저 스스로 아련히 반짝이며 일렁거리는데, 그 즉물적 이미지들의 율동과 울림은 또한 사회적 소외와 싸우는 여성들의 내면의 굴곡을 찹찹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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