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1994년 충남대학교 '충대문학상' 평론 부문 심사평 본문
투고된 글은 두 편밖에 안되었지만 모두 대학생다운 패기와 참신성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현실 세계와 문학적 대결」은 윤동주의 시를 저항시로 볼 것인가, 순수 서정시로 볼 것인가하는 해묵은 논쟁에 정면으로 육박한 글이다. 그 논쟁 자체는 무의미한 것인데, 왜냐하면, 어떠한 저항시도 그것이 시인 한은 서정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서정시는 그것이 사회적 행위인 한은 현실을 향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 논쟁은 서로 다른 범주의 개념들을 억지로 견준 잘못된 논쟁이라 할 수 있으며,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특이한 방식으로 결합되는 모습, 즉 윤동주적 서정의 내재적 사회 관련성일 것이다. 어른들이 벌여놓은 잘못된 싸움판에 투고자는 순진하게 말려 들어간 셈인데, 하지만 그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대학생다운 패기를 통해 그 싸움판의 붕괴에 기여하고 있으니, 바로 시의 내재적 사회성을 본격적으로 캐보려 한 때문이다. 다만, 작품 분석이 주제 독해에 그침으로써, 시적 비유들의 풍요한 암시성을 도식적 우의로 떨어뜨리고, 미리 예정된 결론을 위해 인용이 동원되어서, 윤동주 시 그 자신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갖게 하는 글이었다.
심사자는 「폐쇄된 여성 현실과 모순으로서의 글쓰기」를 선택했는데, 특히 소설 작품에 중층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재미있게 읽혔기 때문이다. 젊은 소설가 신경숙을 다루고 있는 그 글은, 한 불륜 여성의 상처의 근원을 파고들어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몸에 구조적으로 새겨지는 근원적 상처를 발굴해내는 한편으로, 그 상처를 극복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 상처와 동형 구조를 이루는 소설쓰기의 사회적 의미로 자연스럽게 논점을 이동시키고 있다. 삶과 글쓰기를 이렇게 복합적으로 연관시키는 재능과 유려한 문체는, 불필요한 대목들이 언뜻 눈에 띠거나 빈약한 예에서 작품의 의미를 곧바로 이끌어낸다는 결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물론 ‘상쇄’란 심사에만 해당하는 얘기고, 글쓰기에는 봐주기가 없다는 것을 글쓴이 자신이 더 잘 알리라 믿는다. 정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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