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제1회 '김준오 시학상'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제1회 '김준오 시학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8. 08:13

먼저 이 상을 제정한 운영위원회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상의 이름은 대개 해당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기신 분을 기려 제정하곤 한다. 그런데 그 기림의 작업이 몽상처럼 쉽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의욕이 있어야 하고, 의기투합해야 하며, 품을 들여야 할 뿐더러, 최종적으로 재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름을 장식한 분의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이를 기리는 분들이 위의 조건에 부합하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전제 하에, 그 분들 자신이 해당 분야에 권위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김준오 선생은 생전에 남기신 시학 분야의 괄목할만한 성과로 역사에 오래 남을 분이다. 그 분의 이름으로 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한국 시 이론의 현 단계의 수준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생겼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과연 그 수준은 어떠한가?

최종 후보작에 오른 다섯 권의 시 이론서는 모두 그러한 물음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었다. 우선 거의 모든 시론서들이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김준오선생의 독보적인 시론서, 시론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했다. 1982년 초판이 나온 이래 거의 20년간 실질적인 독점 교과서로 군림해 온 김준오 시론의 핵심이 동일성의 시학이라고 한다면, 오늘 후보작이 된 시학서들은 바로 이 동일성의 시학을 넘어서 가고자 하는 것이다. 정효구의 일심의 시학, 도심의 미학은 동일성의 시학에 접근하되, 불교 사상에 기대어 그 동일성을 활동하는 공()으로 변용하여, 경계없는 의 세계로서의 시학을 정립하려 했다. 이승훈의 선과 하이데거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특히 착목하고 그것을 선의 은현동시와 연결시킴으로써 열린 장으로서의 시의 존재론을 그리려 했다. 서동욱의 익명의 밤은 현대적 삶의 존재 양식이 동일성의 반대편에 놓인 익명성에 있다고 파악하고, 그 익명성의 허무 자체로부터 솟아나는 시의 생기를 모색하려 했다. 권혁웅의 시론은 서정시의 경계를 넘어 만발한 현대시의 폭발적으로 다양한 양상에 기대어 전혀 새로운 이질성의 시론을 세우려 했다. 이수명의 횡단만이 무엇을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그의 시적 사유를 매순간 논리적 언어로 변환하여 뱉어냄으로써 그 자체로서 시적 실천인 이론적 사유의 집합체를 만들어 내었다.

심사자들은 이 다섯 권의 책들에 대해 경중을 판별할 수가 없다는 걸 절감하였다. 모두 지난한 공을 들인 노작들이었다. 원래의 목표를 완벽히 달성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노력들만으로도 오늘날 한국시 담론터의 활력을 충분히 느끼게 하였다. 다만, 이승훈 선생이 그 동안 한국 시의 이론화에 기여해 온 연륜과, 동서양의 사상을 아우르며 독창적인 시론을 세우려 했다는 점을 높이 사, 1회 김준오 시학상의 영광을 그이에게 돌리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결정이라는 데에 만장일치로 합의하였다. 수상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김인환·신범순·정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