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1999년 5월 '출판인회의' 선정 좋은 도서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1999년 5월 '출판인회의' 선정 좋은 도서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8. 08:34

선정 소감

첫 회인 탓에 대상 도서가 근 100종에 달했다. 아직 회원으로 등록하지 않은 출판사가 많다는 것을 유념한다면, 순문학에서만 4개월 100종은 놀라운 생산력이라고 할 수 있다. 덕택에 선정자로서는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고, 정밀한 검토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누가 우리에게 분신술을 가르쳐다오!) 또한 같은 이유로 괜찮은’(우리가 보기에) 도서 수가 괜찮아야 할’(출판인 회의가 제한한) 숫자보다 넘쳐나고야 말았다. 너무 잘 알려진 베스트 셀러는 일찌감치 제외되었고, 그래도 아쉬운 몇몇 도서들은 다음 회로 이월되었다.

분포를 보니, 소설 류가 약 2/3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시집, 평전, 에세이, 문학이론 등이었다. 이에 근거해 소설 류에서 6, 비소설에서 3종을 뽑기로 하였고, 소설 6종 중, 아무래도 한국문학이 중심이 돼야겠다는 판단 아래, 국내 창작과 번역 문학의 비율을 2:1로 하였다.

소설 쪽의 특징적인 경향이라면, 박상륭, 현기영, 조정래, 김원우 (그리고 출품되지는 않았으나, 서정인) 등 노장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것. 이는 90년대 소설의 신세대 돌풍에 대한 노장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소설 쪽에서는, 쯔바이크 저작물의 인기에 힘입어 평전류의 출간이 지나치게 활발해지고 있다. 시가 퇴조하고 에세이가 득세하는 현상은 이미 5-6년전부터 시작된 일인데, 아직 이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분석, 혹은 산문의 문학성의 탐구는 주춤거리고 있다. 문학평론가들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박상륭, 평심, 문학동네

박상륭의 소설을 신비주의적으로 혹은 죽음이나 구원같은 형이상학적 관념의 탐구로 해석하는 경향이 꽤 승한데, 그렇게 읽을 게 아니다. 오히려 그의 소설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벌어지는 잡스럽고 찐득찐득한 일상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만 그것들이 인류의 역사를 통째로 꿰뚫는 횡적 엮음과 온갖 생명들의 교류를 중첩적으로 포개는 종적 이음을 통한 우주적 인연의 규모 안에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박상륭적 규모를 짐작하고 읽으면, 그의 소설은 어려운 게 아니라 매우 재미있다. 평심책방을 중심으로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지식 욕망, 이야기 욕망, 그리고 삶의 고통, 마음의 번뇌를 전방위적으로 펼쳐나가면서 인간사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풍자와 속깊은 연민을 쌍둥이로 잉태시키고 이 풍자와 연민을 소설의 자궁 안에서 싸움질시켜 배꼽의 밑바닥으로부터 생의 웃음을 피워올리는 소설이다. 그 배꼽에 가만히 귀를 대 보라. 당신의 배꼽도 스멀거릴 것이다.

 

강규, 나의 아름다운 빵집』』, 해냄

사람들의 가장 조잡한 꿈들, 지지리도 못난 인생들, 누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소설을 쓸 생각을 하겠는가? 작은 이야기 보따리인 소설의 욕망이 실은 세상의 진리를 움켜쥐고자 하는 것임에랴. 간혹 작고 조잡한 것들 속을 헤집으려는 소설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그것대로 그냥 지지하고 데데한 한담에 그치고 말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나의 아름다운 빵집은 다르다. 이 소설은 추레하기 짝이 없는 세상살이들을 모두어 썩 아름다운 꽃다발을 엮어 짜는데 성공하는데, 그것은 작가가 비애로 쑨 풀로 너덜너덜한 인생 쪼가리들을 공들여 붙였기 때문이다. 이 꽃다발을 받아든 독자는 누구나 짠할 것이다. 짠해서 찔끔거리다가 킬킬거릴 것이다.

 

이영진, 아파트 사이로 수평선을 본다,

시인이 아파트 사이로 수평선을 볼 때 독자는 수평선 사이로 창공의 태양을 본다. 뜨겁게 작렬하는 눈부신 태양이 아니라 물을 머금어 수줍게 피어오르는 말간 태양이다. 그 태양은 헬륨 덩어리가 아니라 침묵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왜 침묵인가? 모든 전망이,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그 침묵이 태양인가? 그것들이 묵묵히 가슴 속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검은 침묵이 컴컴한 생각의 창고가 되고, 어둠을 지우려는 안쓰런 노력들이 그 창고 안에서 쉼없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새 삶의 촛불이 켜진다. 그게 수평선 사이로 떠오른다.

 

귄터 바루디오, 기묘한 관계, 한길사

스탈 부인은 프랑스 혁명기, 즉 근대의 탄생기에 정치적으로 기민한 수완을 보여준 사교인일 뿐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문학 개념의 탄생에 중요한 자양분을 제공한 문학 이론가이다. 그 스탈 부인과 소설가 콩스탕 사이의 몰래 한 사랑을 다룬 게 기묘한 관계이다. 독자들께서는 먼 중세로부터 시작되어 17세기에 와서 본격화되고 19세기 초엽에 절정에 달한 유럽 사교계의 비밀의 일단을, 그 사교계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기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지는 일에 몰두하면 그리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유럽 문명과 문화의 생장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살핀다면 영양가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