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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퐁탈리스의 죽음

비평쟁이 괴리 2013. 4. 13. 12:07

 

현대문학4월호엔 이재룡 교수가 퐁탈리스(Jean-Bernard Pontalis)를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그이가 돌아간 게 지난 1월이었는데, 한국 언론에서 그의 부고를 읽은 적이 없다. 그래도 예전에 알튀세르가 사망했을 때 한국 언론이 보인 미미한 반응에 충격을 받았던 데 비하면, 그렇게 놀랍지가 않다. 퐁탈리스는 알튀세르와 같은 명망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의 미디어에, 심지어 대부분의 한국의 문학·문화계 종사자들에게 완벽한 무명으로 존재했던 건, 그가 쇼맨이 아니라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작업에 매달려 온 노동자. 정신분석 사전을 만들고 정신분석의 소중한 개념들을 연마하고 정련한 노동자다. 이런 삶은 새로운 어휘를 창안하여 세상을 당황케 하는 발명가의 삶과도 다르고, 그런 새 어휘들만 골라 찾아 다니며 그걸 상품 삼아 자신의 배를 살찌우는 쇼맨들의 삶과는 아예 양극단이다. 많은 사람들은 발명가가 되길 꿈꾸며 쇼맨으로 산다. 그리고 독자들은 쇼맨들을 발명가로 착각하고 그들의 말을 주워 삼킨다. 그러니 노동자의 노동에 눈길이 갈 일이 거의 없다.

노동자가 할 일은 세상의 소음에 귀막고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이다. 퐁탈리스의 그런 평생이 가장 오래된 한국문예지인 현대문학안에서 멀리 떨어진 작업장의 쇠톱소리처럼 울린다. 그걸 듣게 해준 이재룡 교수도 노동자다.

 

세상은 쇼맨들로 비좁아지는데

노동자의 진땀에선 악취도 안나는구나

 

노동자들의 연대를 외쳐야 할까부다.(201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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